[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지배주주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으로 비판받았던 지난해 두산그룹의 리밸런싱 사태는 주주보호 기조의 이재명 정부에서는 재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회사 측은 자금 여력에 문제가 없다며 추진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산은 자회사한테 손을 벌리고 있고 두산에너빌리티는 해외법인 두산비나 매각을 추진하는 등 자금이 부족한 계열사들은 투자금 마련을 위해 각자도생하는 모습이다.
업계에 따르면 두산은 지난해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매출 500억원의 적자 기업인데다 테마주 성격이 강한 두산로보틱스 밑에 8조원의 우량기업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배치하기 위한 모험을 강행했다. 1:0.63의 합병비율에서 나타나듯 두산밥캣이 크게 저평가받았고 무리한 개편 전략은 시장에서 호응받지 못했다.
투자자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합병비율 조정을 거치는 등 재추진을 시도했으나 계엄이 터치며 결국 무산됐다. 좌절된 리밸런싱 근본에는 ㈜두산을 지배하는 박정원 그룹 회장을 비롯해 오너일가 지배주주만 배채우는 과욕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평가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최악으로 이용한 사례라며 약탈적 자본거래"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업 재편 좌절에 따라 그룹의 자금 조달 계획도 꼬였다. 대표적인 계열사가 두산에너빌리티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기업분할과 지배구조 개편으로 1조원가량의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리밸런싱 좌절로 암초에 부딪쳤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소형모듈원전(SMR)·가스터빈·대형 원전을 비롯한 신사업 확장을 위한 재원 마련이 절실했다.
SMR 시장에서 국내 유일한 사업자로 평가받는데 이 분야는 글로벌 경쟁자도 많지 않은데다 시장 급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생산 설비 확충으로 시장 확장에 빠르게 대응할 필요성이 컸으나 자금 조달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순차입금만 4조원에 육박하고 있어 유동성 공급이 필요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1280억원의 80차 모보증 일반사채 발행을 마무리하며 유동성을 보충했다. 또 발전용 보일러 사업을 하는 베트남법인 두산비나를 비핵심 자산으로 분류하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4000억원가량을 손에 쥘 것으로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도 리밸런싱 좌절로 자회사에 손을 벌린 셈이 됐다. 최근 두산로보틱스 보유 주식을 담보로 5500억원을 대출했다. 이자율은 4.9%다. 사업형 지주사인 ㈜두산의 전자BG 투자를 위한 대출로 확인됐다. 전자BG는 전자제품의 필수 부품으로 사용되는 인쇄회로기판(PCB)의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을 생산하고 있다. CCL은 반도체, 스마트폰, 통신장비 등 첨단 전자기기 핵심소재다. 두산 관계자는 "증설 여부는 모르겠지만 전자BG의 업황이 굉장히 좋아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산도 자회사한테 손을 벌릴 정도로 현금 여력이 넉넉한 편은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두산의 3월 말 유동부채는 1조3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유동자산은 8800억원에 불과했다. 유동비율 68%로 단기 유동성 대응 능력이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금성자산은 1377억원인데 순차입금은 1조3325억원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두산퓨얼셀도 회사채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두산그룹이 사업구조 개편을 재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주주까지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두산 그룹의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 시도는 투자자 반발과 금융당국의 노력으로 무산됐으나 투자자들은 유사한 사례가 재발할 가능성을 우려했고 결국 기업가치 할인으로 귀결됐다"며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안으로 두산그룹이 향후 인위적 지배구조 개편을 다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사업구조 재편 재추진에 관한 물음에 "지난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안 됐다"며 "당장 재추진 계획은 없고 자체 자금 조달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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