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성그룹이 '일류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그룹사 출범을 선포한 지 올해로 11년차를 맞았다. 해성그룹은 '현금왕'이라 불렸던 故 단사천 명예회장이 1937년 창립한 일만상회에서 시작해 어느덧 총 자산 규모가 2조원이 넘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0년을 기점으로 해성산업을 지주사로 두고 한국제지·한국팩키지·계양전기·해성디에스를 사업회사로 거느리는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며 또 한번 변화의 전기를 다졌다. 딜사이트는 앞으로 그룹 성장을 이끌어나갈 핵심 계열사들의 현 주소를 점검해보며 해성그룹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나아가기기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해성그룹 지주사 해성산업이 코스닥 시장 우량기업부로 승격한 지 4년 만에 중견기업부로 강등됐다. 주요 계열사 지분 가치 하락과 실적 악화가 겹쳐 해성산업 재무지표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한 탓이다.
특히 해성산업 경영실적이 그룹 경영 상황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나 다름없는 만큼 이번 소속부 강등이 그룹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최근 3년 평균 순이익 7억·ROE 0%…우량기업부 유지조건 한참 못 미쳐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이달 2일부로 해성산업 소속부를 우량기업부에서 중견기업부로 변경했다. 앞서 해성산업은 2021년 벤처기업부에서 우량기업부로 승격했으며 4년간 해당 지위를 유지해왔다.
코스닥 상장사 소속부는 기업규모 및 재무상태에 따라 크게 신성장기업부·중견기업부·벤처기업부·우량기업부로 나뉜다. 이 중 우량기업부가 최상위 등급에 해당한다. 우량기업부 소속 조건은 최근 3년 간 ▲자기자본이익률(ROE) 5%·평균 순이익 30억원 ▲평균 매출액 500억원 이상 등이다. 최근 사업연도 재무제표상 자본잠식도 없어야 한다.
해성산업 경영실적에 반영되는 사업부문은 크게 임대시설관리·제지·산업용품 및 전장품·반도체 부품 제조로 나뉜다. 이 중 부동산 관련 임대시설관리업은 해성산업이 별도로 영위한다. 제지 부문에는 계열사 한국제지와 한국팩키지, 국일제지유한공사 실적이 반영된다. 산업용품 및 전장품 부문은 계양전기가, 반도체 제조는 해성디에스에서 담당한다. 국일제지유한공사는 한국제지가 2013년 인수한 중국 특수지사업장이다.
해성산업이 중견기업부로 강등된 배경에는 재무구조가 흔들린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2022~2024년 해성산업 연결 지배지분 평균순이익은 7억원으로 우량기업부 등급 유지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자기자본이익률(ROE)에도 빨간불이 켜진 실정이다. 최근 3년 간 해성산업 평균 ROE(지배지분 순이익 기준)는 0%를 기록했다. 사실상 기업이 자기자본을 활용해 이익을 전혀 창출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ROE는 자본총계를 순이익으로 나눈 뒤 백분율로 환산한 값이다.
◆ 한국제지·계양전기 투자주식처분손실 '발목'…1분기 실적도 '흐림'
해성산업 재무 건전성은 주력 계열사 지분가치와 수익성 하락 등이 맞물려 나빠졌다. 먼저 해성산업 별도 실적이 집계되는 임대시설관리 부문에서만 2023년과 2024년 각각 당기순손실(내부거래 제거 전) 2089억원, 170억원을 기록했다. 해당 사업부문이 2년 연속 종속기업투자주식처분손실을 인식한 여파다.
해성산업에 순손실을 안긴 주범으로는 주력 계열사 한국제지와 계양전기가 지목된다. 해성산업은 2023년 8월 세하와 한국제지 합병 당시 신주를 교부 받으면서 종속기업투자주식처분손실 2080억원을 인식했다. 해성산업이 이전까지 보유했던 한국제지 주식 장부금액 대비 신주의 가치가 훨씬 낮아 손실을 대거 인식한 결과다.
지난해에는 계양전기가 해성산업 순이익을 갉아 먹었다. 계양전기는 지난 11월 천안공장이 폭설 재해를 입는 등 사업에 차질이 빚어졌는데 같은 해 순손실만 612억원을 냈다. 해성산업 실적에 연결 반영된 산업용품·전장품 부문 순손실 규모만 554억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해성산업은 계양전기를 대상으로 손상차손 196억원을 인식하기도 했다. 손상차손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가치가 장부금액보다 낮아졌을 때 그 차이를 손실로 회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해성산업이 계열사들의 부진한 행보로 인해 중견기업부로 다시 내려앉으면서 그룹 위상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업계에서는 중견기업부 강등으로 그룹 전반의 투자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신용도 관리에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들어서도 우량기업부 재진입 필수 요건이나 다름없는 실적 반등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올 1분기에도 해성산업 ROE는 0%에 그쳤는데 지배주주순이익(55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63% 급감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 같은 기간 전장품 부문(-26억원)과 반도체 부문(-35억원)이 순손실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다.
해성산업 관계자는 "중견기업부 소속부 변경 건의 경우 실적 외 다른 특이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해성그룹은 2020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고 해성산업이 해성디에스·계양전기·한국제지·한국팩키지를 종속회사로 거느리는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해성산업은 같은 해 자사 제지사업부를 한국제지로 물적분할 시켰으며 2023년 8월 백판지 제조 계열사 세하가 한국제지를 흡수합병해 '한국제지'로 새롭게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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