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호연 기자]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다시 인상하며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의 공개매수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장에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만큼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판정승을 점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 회장이 공개매수 가격을 획기적으로 상향하지 못한 만큼 이번 가격 인상이 그와 고려아연의 밑천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한다. MBK파트너스는 단 한 주의 주식만 매수에 성공해도 ㈜영풍과의 주주 간 계약으로 최소 2년 안에 주요주주로 등극한다. 장기간 꾸준히 고려아연 지분을 확보하며 이사회 장악을 시도하면 최 회장이 이들의 공세를 점점 버티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공개매수 자금의 85%, 금융권 차입금
고려아연은 11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회사의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6만원 인상했다. 같은 날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 등 최씨 일가 3인이 출자한 제리코파트너스도 영풍정밀에 대한 대항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3만원에서 3만5000원으로 올렸다. 두 회사에 대한 공개매수는 각각 오는 23일과 21일 종료된다. 18일로 예정된 MBK파트너스의 자사주 공개매수 중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진행 중인 자사주 공개매수는 즉각 중단된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은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제시한 83만원보다 높다. 영풍정밀에 대한 공개매수 가격 역시 MBK파트너스·㈜영풍의 3만원보다 5000원 많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 동결한 상태다. 고려아연의 가격 상향은 예견된 일이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가격 경쟁 과열을 우려했고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동조하며 압박을 가했지만 최 회장 측에선 경영권 방어가 우선이었을 것"이라며 "공개매수 가격을 상향하는 것 외엔 뾰족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 인상으로 최 회장과 고려아연이 투입 가능한 자금을 거의 모두 쏟아냈다고 평가한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에 투입할 자금의 총액은 3조931억원에서 3조6852억원으로 증가했고 고려아연 자기자금은 5000억원에서 5700억원으로 늘어났다. 전체 자금 중 회사 자기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6.2%에서 15.5%로 0.7%포인트 하락했다.
시간이 갈수록 고려아연은 자기자금 대신 금융권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의 이자비용으로 연간 약 2000억원을 부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지난해 연결기준 순이익 5334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최대주주 등극은 시간문제…MBK가 자금력 앞서"
MBK파트너스가 선제적으로 공개매수 가격 상향 중단을 선언한 것은 차선책으로 계획한 장기전에 돌입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공개매수에서 1주만 얻어도 주요 주주 등극이 가능한 만큼 고려아연의 지분율을 서서히 늘리면서 단계적으로 이사회를 장악한다는 전략이다.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체결한 주주간 계약에 따르면 회사는 공개매수 완료 후 2년이 되면 ㈜영풍 측과 MBK파트너스 보유 지분 총합의 '50%+1주'를 얻게 된다. 고려아연 재적이사 과반수가 MBK파트너스 및 ㈜영풍 측이 지명하는 이사로 선임되면 기간과 상관없이 ㈜영풍 및 ㈜영풍 특수관계자 보유 지분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주식 1주만 이번 공개매수로 확보해도 2년 내 회사의 주요주주로 등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MBK파트너스 입장에선 공개매수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콜옵션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확보하고 나머지 자금으로 장내매수 및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 등을 추진할 수 있다. 공개매수 성공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압도적인 지분을 확보하면 이사회 장악은 수월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MBK파트너스가 이번 공개매수에서 당초 최소 목표치(7%)를 채우지 못하고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에 성공해도 MBK파트너스는 남은 자금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분율 확대에 활용할 수 있다"며 "활용 가능한 자금을 대부분 소진하고 이자비용부담까지 늘어난 고려아연에겐 공개매수 이후 MBK파트너스의 공세가 큰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개매수가 끝나면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 격전지는 내년 초로 예정된 주주총회가 유력하다. 현대차와 한화 그룹 등 우군으로 거론되던 국내 재벌기업 역시 공개매수에서 발을 빼며 최 회장의 고립은 심화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등기이사 13명 중 5명의 임기가 올해 만료된다"며 "정관 상 이사 선임 상한선이 없는 만큼 MBK파트너스가 올해 말까지 고려아연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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