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삼성중공업이 러시아 즈베즈다조선과 건조 계약해지의 위법성을 다투는 상황에서 합작법인(JV)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즈베즈다조선과의 협력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셈이다. 삼성중공업이 합작법인 청산에 나서면서 러시아 시장 철수작업이 막바지로 향하는 모양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최대 규모 조선소인 즈베즈다조선의 합작법인 'ZVEZDA-Samsung Heavy Industries LLC'에 대한 청산절차에 돌입했다. 해당 법인은 삼성중공업과 즈베즈다조선이 2020년 셔틀탱커 공동건조 및 기술 지원 차원에서 지분율 49대 51로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셔틀탱커는 해양플랜트에서 생산된 원유를 육상 저장기지까지 운송하는 특수 목적선박이다.
삼성중공업은 합작법인 설립 이듬해 러시아법인(Samsung Heavy Industries Rus)도 별도로 세우고 현지 시장 대응력을 강화했다. 당시 삼성중공업은 셔틀탱커 공동 건조 사업 외에 즈베즈다조선 현대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었다. 크레인 설치, 드라이도크(육상도크) 건설 등을 협력하며 파트너십을 공고히 다졌다.
이 같은 노력은 대규모 계약을 따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삼성중공업은 2019~2020년 즈베즈다조선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선 15척과 셔틀탱커 7척 등 총 22척에 대한 건조계약을 확보했다. 계약금액은 42억달러(5조7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양사의 관계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즈베즈다조선을 특별지정제재대상(SDN)으로 지정한 까닭이다. SDN에 오르면 해당 기업의 모든 자산은 동결되고 외국과의 거래도 금지된다. 양사가 더이상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셈이다.
결국 삼성중공업은 즈베즈다조선 측에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통보하고 일부 인도하고 남은 선박 17척의 건조를 중단했고, 현지 인력도 철수시켰다. 나아가 즈베즈다조선이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양사의 갈등은 법적공방으로 확대됐다.
즈베즈다조선은 이미 지불한 선수금 8억 달러(1조1000억원)와 지연이자를 환불해 달라고 요구 중이다. 반면 삼성중공업은 불가항력에 의한 건조 중단임에도 선주 측의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와 선수금 반환 등을 요구한다며 관련 사안을 싱가포르 중재법원에 제소했다. 계약 해지의 위법성과 반환 범위 등을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사의 합작법인도 자연스레 정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삼성중공업이 최근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4'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해외 사업장 중 러시아 직원은 7명 뿐이다. 일찍이 러시아에 파견한 인력을 대부분 철수시킨 데 이어 4년간의 합작법인 관계도 결별 수순에 들어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의견이다.
한승한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중공업 입장에선 당장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러시아 프로젝트를 신규로 가져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LNG선 발주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굳이 러시아 물량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하루빨리 합작법인을 정리해 관련 리스크를 털어내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중공업의 러시아법인 'Samsung Heavy Industries Rus'은 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아직 러시아 법인의 경우 청산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지 상황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청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과거 선박 건조 사업을 위해 즈베즈다조선과 합작법인을 설립했었다"며 "러시아 법인은 그대로 두고 있고 합작법인은 청산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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