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SK그룹이 SK온을 살리기 위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합병비율이 어떻게 산정될 지 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합병비율에 따라 대주주와 재무적투자자(FI)가 유리할 수도, 소액주주가 이득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주주인 SK㈜ 입장에서는 지분 90%를 들고 있는 SK E&S의 가치를 높여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을 1대 2 수준으로 설정할 경우 신설합병 법인에 대한 지분율을 70%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SK E&S에 투자한 FI 들도 엑시트(투자회수)에 유리해진다. 반면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들은 반대로 지분율이 낮아져 손해가 커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이에 SK 측에서는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합병되는 신설법인이 향후 SK이노베이션의 저평가 된 기업의 가치를 올려주는 동시에 사업포트폴리오도 확장에 따른 재무적 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라는 식으로 설득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시장의 시각이다.
투자은행(IB) 업계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내달 이사회를 개최하고, 오는 11월 1일께 합병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은 결의일과 합병계약일 중 앞서는 날의 전날 기준 1개월, 1주일, 최근일 가중산술평균종가를 산술평균한 가액을 기준으로 100분의 30(계열회사간 합병의 경우에는 100분의 10)의 범위에서 할인 또는 할증한 가액, SK E&S는 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각각 1과 1.5의 비율로 가중산술평균한 가액인 본질가치로 합병가액 산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SK㈜는 SK이노베이션의 지분을 36.22%, SK E&S는 90%를 보유하고 있다. SK㈜ 입장에서는 9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SK E&S의 가치를 높여 합병가액을 정하면 합병 신설법인에서 더 많은 지분을 가져올 수 있어 이득이다. SK E&S의 FI 입장에서도 SK E&S의 가치를 높이면 보유지분 증가에 따른 수익률을 높일 수 있어 SK㈜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11만원대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유가증권시장 평균(0.9배)의 절반인 0.49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가총액도 최근 10조원대까지 급락했다. SK이노베이션의 평가가액은 상장사이기 때문에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회 결의가 다음달로 예상돼 현재 상황에서는 주당 10만원 초반대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특별조항으로 PBR 1배까지 계산이 가능하지만 굳이 SK이노베이션의 가치를 올리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핵심은 SK E&S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비상장사 기업가치 평가는 지배주주의 선택에 따라 '고무줄'로 변할 수 있다. 올해 1분기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연결 기준 유동 자산은 35조4500억원이지만 별도 기준은 1조6400억원이다. 반면 SK E&S는 연결 기준 유동자산은 5조1400억원이지만 별도 기준은 1조1600억원이다. 자회사를 떼어낸 개별 기준으로 보면 양사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실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기준 매출액은 SK이노베이션이 77조2880억원, SK E&S가 11조1670억원으로 차이가 나지만 영업이익은 각각 1조9040억원, 1조3320억원으로 비슷하다. 오히려 순이익은 SK E&S가 1조860억원으로 SK이노베이션 5550억원보다 많다. SK E&S의 가치를 충분히 높여 합병비율을 정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배경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이 합병비율을 1대 1 정도로 계산한다면 SK㈜의 합병 신설법인의 지분율은 63%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SK E&S의 가치를 높여 합병비율을 1대 2로 정한다면 SK㈜의 신설법인 지분율은 72%까지 올라간다.
반면 SK E&S의 주당 가치는 현재 고평가 돼 있다. 2021년 11월 SK E&S는 상환전환우선주(RCPS) 409만4293주를 발행하면서 2조4000억원을 조달했다. 우선주 1주당 발행가는 58만6182원이다. 우선주의 전환권 행사시 전환비율은 우선주 1주당, 보통주 2주다. 이에 보통주 1주의 가치는 29만3091원이다. 2023년 1월과 10월 각각 2675억원씩 조달했을 때도 주당 발행가격은 58만8000원이었다. 보통주 1주 가치로 계산했을 때 29만4000원이다.
계열사 사이의 합병에서 합병가액을 기준시가의 10% 범위에서 할인 및 할증할 수 있다. SK E&S가 주당 29만4000원이 인정되고 SK이노베이션은 할인 또는 할증한 가액을 더해 주당 10만원 초중반대로 단순 계산하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이 1대2 수준으로 정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은 합병 신설법인의 주식을 적게 받아 불리하지만 SK㈜와 SK E&S 투자자들은 지분이 늘어나면서 유리해진다.
특히 SK E&S는 글로벌 사모펀드 운영사 콜버그크래시로버츠(KKR)에게 3조1350억원 규모의 RCPS를 발행한 상황이다. RCPS 투자자는 중대한 경영상 변화가 생기면 기한이익상실(EOD) 발동을 통해 발행사에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SK 입장에서는 KKR이 조기상환을 청구하게 되면 도시가스사업 등 핵심 캐시카우를 넘겨줘야 할 수도 있어 합병의 이유가 사라진다. 하지만 1대 2의 합병비율 설정 등 KKR에게 유리한 조건을 부여할 경우 보통주 전환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
이에 업계에서는 SK E&S의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고 SK이노베이션을 저평가해 합병 비율을 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 0.35였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도 합병 비율을 최대 1대 3으로 올리면 KKR 등 투자자들에 대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SK㈜ 입장에서는 추후 신설법인의 지분을 매각해 유동화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다만 SK이노베이션 주주들 달래기가 변수다. SK그룹 입장에서는 "이노베이션과 E&S의 합병을 통해 양사가 시너지를 발휘해 자산 10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그동안 저평가됐던 주가도 크게 오를 것"이라고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합병 후 신설법인의 주식도 대부분은 SK㈜ 보유하기 때문에 "수급적 요인에 따른 주당 가치 희석 우려도 없다"며 주주들을 안심시킬 것으로 보인다. SK E&S FI들에게도 "유리한 합병 비율을 통해 우회상장 효과로 엑시트가 가능해 SK E&S 단독 IPO보다 나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해 조기상환을 미연에 방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SK가 36.22%, 외국인 20.9%, 기관은 14.3%로 개인 주주는 20%가 넘는다"며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받기 위해서는 SK가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을 잘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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