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이제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게임 체인저'가 됐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대한민국을 미국,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AI 3대 강국(G3)'으로 도약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범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10조원 규모의 예산 투입과 'AI 고속도로' 구축, 소버린(Sovereign) AI 확보 등은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한 담대한 여정의 시작이다. 딜사이트는 정부의 AI G3 로드맵을 심층 분석하고, 대한민국이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수 과제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최령 기자] 한국이 AI 모델 수와 인구 대비 특허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오르며 'AI 3강' 외형을 갖춰가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인재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석·박사급 연구자 10명 중 4명 이상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으며 과학기술 인력 부족 규모는 5년 새 60배 급증했다. 정부가 해외 인재 유치 예산을 대폭 늘리고 국가과학자 제도를 신설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연구환경과 처우 혁신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발표한 '2026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출시된 주목할 만한 AI 모델 수에서 5개를 기록해 미국(50개), 중국(30개)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다. 지난해 4위에서 한 계단 상승한 결과로 캐나다·프랑스·영국(각 1개)을 앞질렀다. 5개 모델 가운데 4개는 LG AI연구원이 개발했으며 기관별 순위에서 딥시크·칭화대와 같은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인구 10만명당 AI 특허 수는 14.31건으로 룩셈부르크(12.25건), 중국(6.95건), 미국(4.68건)을 제치고 2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AI 도입률 상승 폭 세계 1위, 산업용 로봇 도입 수 세계 4위(3만600대), G20 국가 중 AI 관련 법안 통과 건수 2위(17건) 등 주요 지표에서 고루 상위권을 유지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AI 고속도로 구축과 독자 AI 모델 확보, AX 확산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며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면서 대한민국이 AI 3대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인재 유출이 유입보다 많다는 점을 한국의 핵심 과제로 명시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일정 수준의 인재 풀은 확보했지만 소프트웨어·연구보다 하드웨어·반도체 분야 인재 비중이 높다고 짚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이공계 인재 해외 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체류 이공계 석·박사급 191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42.9%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IT·소프트웨어·통신 분야에서는 이 비율이 44.9%로 더 높았다.
또 한국경제연구원이 '기술패권 경쟁과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에서 추산한 2024~2028년 과학기술 연구인력 부족 인원은 4만7000명으로 2019~2023년(800명) 대비 약 60배에 달한다. 이공계 석·박사 과정생이 2025년 이후 지속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매년 3~4만명의 학부생 및 석·박사 인력이 해외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으로 파악된다.
의대 쏠림 현상도 이공계 인재 공급 기반을 잠식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거론된다. 과학고·영재학교 출신의 의대 진학률은 지난해 4.56%를 기록했다. 이공계 육성 취지로 설립된 학교에서 배출된 최고 인재가 AI·이공계 현장이 아닌 의대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력 미스매치도 문제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인력 부족이 단순한 총량 부족이 아니라 가치사슬 단계별·역할별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검증·운영(MLOps)·산업 적용 분야의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현행 정책은 개발자 중심으로 설계돼 이를 정밀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올해 신설된 국가과학자 제도에는 25억원이 신규 편성됐으며 과기정통부가 지난 2월 공고한 해외우수과학자 유치사업(브레인풀·브레인풀+) 예산은 전년 대비 40.7% 늘어난 546억원이 투입된다. 세종과학펠로우십에는 복귀·유치 트랙이 신설돼 이달 국외연수 30명, 복귀·유치 200명 등 총 230명의 신규 과제가 확정됐다. 이공계 연구생활장려금 지원 대학도 35개교에서 50개교 이상으로 확대된다. 교육 기반 측면에서는 교육부가 지난 15일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거점 국립대 3곳에 기업 연계 단과대학 설립과 AI 융합교육 전담기구 구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실제 잡코리아 공고 데이터에서도 올해 1분기 AI 키워드 채용 공고가 5년 전 대비 112% 증가했고 신입직 공고는 162% 늘었다. 비수도권 증가율(232%)이 수도권(110%)을 크게 웃돌며 AI 인재 수요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흐름도 확인됐다.
다만 업계에서는 예산 투입과 유치 프로그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간 투자 규모에서 한국은 7억8000만 달러(약 2조6000억원)로 세계 12위에 그쳐 미국(2859억 달러)과의 격차가 여전히 압도적이다. 연구환경 개선과 처우 혁신, 장기 커리어 안정성 확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이 특허나 모델 수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오른 것은 분명 대단한 성과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인력 가뭄'과는 괴리가 크다"며 "정부 지원금이 마중물 역할은 할 수 있어도 글로벌 빅테크와의 압도적인 처우 격차와 연구 자율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내 인재들의 '엑소더스(대탈출)'를 막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단순히 개발자를 양성하는 수준을 넘어 배출된 인재들이 국내에 정착해 장기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고 파격적인 연구 환경 혁신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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