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국내 주요 골판지 업체들이 일제히 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하위 박스 제조사들의 납품가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수년간 실적 악화에 시달려온 골판지와 박스업계로서는 원가 부담을 판가에 전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특히 전쟁 여파로 인한 글로벌 원자재 수급 불균형 우려가 고조되는 만큼 이번 가격 현실화는 업계 수익성 개선에 확실한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 3월말부터 골판지 원단·상자 단가 상승…"인상 없이는 대응 불가"
13일 골판지업계 등에 따르면 아세아제지 계열 박스 제조사인 제일산업은 지난달 30일 고객사에 단가 인상 공문을 발송했다. 해당 공문에는 "최근 각 제지사로부터 원지 가격 인상 통보를 받았고, 인건비와 제조비용이 대폭 상승해 원가 인상 요인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31일부터 업체별 개별 협의를 통해 골판지 원단과 상자 판매 가격을 조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일산업은 지난해 말 기준 모기업 아세아제지(지분율 100%)로부터 1228억원 규모의 골판지 원지를 매입했다. 관계사인 경산제지와 유진판지에서의 매입액은 각각 467억원, 17억원이었다. 제일산업의 지난해 원부재료와 상품매입액이 2457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재료 매입의 모기업 의존도는 약 50%에 달한다. 여기에 관계사 거래까지 모두 포함하면 아세아제지 계열 내부거래를 통한 원재료 조달 비중은 69.9%까지 치솟는다.
신대양제지 계열의 대영포장은 이달 6일 출고분부터 골판지 원단(상자) 가격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대영포장은 "원지 가격 인상 통보를 받은 데다, 제조비용 증가로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어 부득이하게 원단 가격을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대영포장은 지난해 원부재료·상품매입액으로 2014억원을 지출했는데, 특수관계자인 신대양제지와 대양제지공업 등에서 48.8%에 해당하는 983억원의 거래가 발생했다. 또 다른 신대양제지 계열 광신판지 역시 원단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태림포장도 이미 지난달 9일부터 원단 가격을 인상한 상태다. 회사는 "제지사로부터 통지된 원지 가격 인상(지종별 톤당 7~8만원)과 함께 제조 비용 상승에 따라 원단 및 상자 공급가를 인상한다"고 공지했다. 이 외에도 골판지 원지와 원단을 모두 생산하는 한국수출포장공업(한수포공)을 비롯해 영화수출포장과 신안피앤씨 등의 중견·중소 업체들이 일제히 가격 인상에 동참하고 있다.
◆ '수익 악화라는 확실한 명분…대형사일수록 수익 회복 탄력성↑
업계 안팎에서는 골판지 원지와 원단의 가격 인상 흐름이 예년과 달리 이례적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통상 원지 가격 인상분이 원단과 상자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약 3~4개월의 시차가 소요된다. 하지만 올해는 제지사의 원지 가격 인상 발표 직후 박스 제조사의 단가 조정이 이뤄지는 등 가격 전이 속도가 전례 없이 빨라진 모습이다.
골판지 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점은 가격 인상의 명분이 된 모습이다. 실제로 ▲태림페이퍼 ▲아세아제지 ▲신대양제지 ▲삼보판지 ▲한수포공 국내 골판지 업계 상위 5개사 대부분이 수익성이 악화되거나 적자 전환했다.
태림페이퍼의 경우 지난해 별도기준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7.4%, 42.6% 줄었다. 아세아제지와 신대양제지는 두 자릿수의 수익성 하락을 기록했으며, 삼보판지와 한수포공은 적자폭이 대폭 확대됐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원지 공급가를 올리는 만큼 반발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더군다나 원단 업체의 경우 중소 기업체가 대부분인 만큼 고정비 부담 가중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두드러졌다. 매출 기준 국내 1위 업체인 태림포장은 지난해 별도기준 영업적자 52억원을 기록했으며, 제일산업 역시 마이너스(-) 55억원의 적자를 냈다. 흑자 기조를 이어간 영화수출포장은 영업이익이 72% 급감했고 순이익은 손실 전환했다. 이 같은 이유로 원단 가격 인상에 대한 시장 반발이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외적인 변수도 가격 인상의 설득력을 높였다. 올해 2월 발발한 미국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해상 통로가 막히면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고, 고객사들이 선제적인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판가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골판지 업계가 조기 가격 인상을 마무리 지으면서 수익성 개선 효과를 누릴 것이라는 시각을 견지 중이다. 특히 원지부터 상자 제조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대형사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원가 부담을 피할 수 없지만, 판가 인상이 본궤도에 안착하는 시점부터 그룹 전체의 마진 구조가 통합돼 수익성 회복 탄력성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골판지업계 한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상쇄하기 위해 원지와 원단 업체가 일제히 가격을 인상하면서, 최종 생산물인 박스 판매가 역시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박스의 경우 마땅한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판가 현실화가 업계 전반의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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