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전기차용 충전기 제조기업 SK시그넷의 시가총액이 SK㈜가 투자할 당시보다 3000억원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저품질 이슈 등으로 기업가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크게 떨어진 몸값 탓에 매각 적기를 놓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내부에서는 SK시그넷이 매각을 할 수 없을 만큼 회사가 붕괴 돼 팔 수도 없는 상태라는 분석이다. 롯데이노베이트와 현대케피코 등 대기업 계열사들은 이미 전기차 충전 사업을 위해 살 만한 회사는 다 샀고 SK시그넷 경우 영업망까지 망가진 상태라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SK시그넷은 1998년 설립된 시그넷 시스템에서 2016년 EV(Electric Vehicle) 충전기 전문 기업으로 인적 분할돼 세워졌다. 이후 2021년 SK에 인수됐다. 전기차 충전기 제조 시장에서 선두 업체로 평가받고 있으며 50kW 이상 고속 충전기 분야에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
SK의 실탄 지원 속에 2021년 말 SK시그넷의 순현금은 2243억원에 달했고 부채비율은 19%에 불과했다. 실적의 경우 2022년 매출 1600억원으로 2021년(800억원)보다 2배로 불어났다. 547억원의 수출 실적이 1329억원으로 급증한 효과였다. 미국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4년가량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실적, 재무상태, 기업가치 모두 낙제점이다. 매출의 경우 2022년 정점을 찍은 이후 2023년 500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 소폭 반등해 84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년(2023~2024) 누적 영업적자는 3920억원이다. 2023년의 경우 제품 불량과 AS에 따른 판매보증비가 477억원 발생하며 실적 악화의 요인이 됐다. 2022년 판매보증비는 77억원에 불과했다.
2024년 말 기준 자본총계 -1028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곳간은 바닥나 순차입금 587억원이다. 현금으로 빚을 상환해도 587억원을 더 갚아야 한다는 의미다. 실적과 재무 악화 속에 몸값도 하락했다. 코넥스에 상장돼 있는 SK시그넷의 지난 21일 종가 기준 시총은 796억원이다. SK가 인수할 때 시총은 3890억원에 달했다. 4년 새 3000억원가량 감소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회생이 힘든 상황에서 인수자가 나타나기 어려워 '울며 겨자먹기'로 유상증자를 통해 호흡기를 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 SK는 지난달 SK시그넷이 진행하는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경영 정상화를 위한 현금을 지원했다. 1150억원을 추가 투자했고 SK 지분율은 56%에서 63%로 상승했다.
이는 최근 에코솔루션(ES)사업본부 산하의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종료한 LG전자와 비교된다. LG의 경우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시장의 성장 지연과 가격 중심 경쟁구도 심화 등 사업 환경 변화에 따른 전략적 리밸런싱을 진행했다. 반면 SK의 경우 그동안의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유증까지 진행하면서 사업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사실상 매각대상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 사업 종료가 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SK시그넷을 지금 팔기에는 투자 대비 손실이 너무 크다. 전기차 밸류체인 확장 국면에서 과거 비싸게 샀던 매물을 지금 시점에서 너무 싸게 팔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며 "2~3년 영업활동을 개선해 매각하라는 오더가 SK시그넷으로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떨어진 가운데 매각하기보다 영업 확대를 통한 몸값 회복을 기대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SK가 매각 대상자 찾기를 포기하면서 장기적인 충전기 시장의 성장에 베팅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캐즘에도 충전기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고 잠재력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SK시그넷의 경우 사업 확장의 속도 조절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SK시그넷 측은 "미국·유럽 파트너십으로 글로벌 사업 확장을 가속화하고 경영 효율화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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