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퇴직연금 제도가 2005년 12월 처음 시행된 이후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적립금 기준 400조원을 넘었고 2040년 10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빠르게 성장 중인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다양한 금융 분야의 쟁쟁한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개별 금융사들이 퇴직연금 사업을 어떻게 진행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이규연 기자] 현대차증권은 국내 증권업계에서 중견사로 분류되지만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큰손'으로 꼽혔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물량을 바탕으로 안정적 사업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성장성을 확보하려면 현대차증권 역시 '그룹 밖'의 비중을 늘려 그룹사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차증권은 분기별 보고서의 '사업의 개요' 부분에서 퇴직연금을 주요 사업으로 명시했다. 다른 예시는 IB(투자은행)과 리테일(개인금융) 등 더욱 포괄적인 부문이다. 이를 보면 현대차증권 내에서 퇴직연금 사업의 중요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차증권이 비교적 작은 몸집의 증권사인데도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최상위권 주자인 점이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다. 현대차증권은 2024년 3분기 말 기준 자기자본 1조293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증권사 중에서 15위 수준이다.

그러나 현대차증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작년 3분기 말 16조8084억원으로 국내 퇴직연금 사업자 증권사 14곳을 통틀어 2위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연이어 현대차증권은 2024년 4분기 기준으로도 퇴직연금 적립금 17조5151억원을 기록해 2위 자리를 지켰다.
퇴직연금은 현대차증권의 주요 수익원이기도 하다. 현대차증권이 2024년 3분기 누적으로 퇴직연금을 포함한 자산운용 부문에서 거둔 영업수익은 8230억원이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영업수익 1조1615억원의 70.8%에 이른다.
현대차증권의 퇴직연금 사업을 살펴보면 증권사로서는 이례적으로 DB형(확정급여형)의 적립금 비중이 높다. 퇴직연금 종류는 DB형과 DC형(확정기여형), 개인형 IRP(개인형 퇴직연금)로 나뉜다.
DB형 퇴직연금은 적립금을 사용자인 기업이 운용한다. 반면 DC형은 기업이 임금총액 일부를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하면 근로자가 운용하는 방식이다. 개인형 IRP는 개인이 퇴직급여를 적립해 직접 운용한다.
2024년 4분기 기준 현대차증권의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DB형 비중은 87%에 이른다. 증권업계에서 퇴직연금 적립금 1위 미래에셋증권(21.7%) 및 3위 한국투자증권(46.9%), 4위 삼성증권(26.8%), 5위 NH투자증권(47%) 등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편이다.
이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라는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직원들이 현대차증권의 DB형 퇴직연금 가입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증권의 2024년 4분기 기준 DB형 퇴직연금 적립금 15조2430억원에서 계열사 비중은 원리금 보장형과 비보장형 합산치 기준 87.3%(13조3100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DC형 퇴직연금 적립금 5611억원에서도 계열사 물량 비중은 30.7%(1723억원)로 적지 않다.
현대차증권은 2008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이래 계열사의 지원 아래 퇴직연금 사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기반을 닦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DB형 퇴직연금의 장기 수익률 기록을 살펴보면 아쉬움이 다소 남는다. 현대차증권의 DB형 퇴직연금 수익률을 2024년 말부터 최근 10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원리금 보장형 2.38%, 원리금 비보장형 2.51%다. 증권업계 기준으로 수익률 순위도 중간을 밑도는 데다 원리금 비보장형의 경우 신한은행(3.68%) 등 일부 은행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계열사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했지만 더욱 성장하려면 그룹사 밖의 신규 가입자를 모아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현대차증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4년 4분기 동안 4.2%(7068억원) 늘었다. 이는 금액 기준 증권업계 5위였지만 성장률 기준 13위 수준이다.
현대차증권이 2024년 10월 31일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시행된 덕을 예상만큼 보진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제도를 통해 개인고객은 기존 금융상품 해지 없이 다른 금융사로 퇴직연금을 옮길 수 있게 됐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에 대비해 현대차증권은 관련 TF(태스크포스)를 꾸리고 DC형 영업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정부분 성과를 냈지만 미래에셋증권은 물론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보다 적립금 증가 규모가 작았다.
현대차증권이 2024년 말 조직개편에서 퇴직연금 조직을 손본 것 또한 이런 상황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당시 현대차증권은 리테일본부 아래 연금사업실을 편재했다. 더불어 여러 퇴직연금 조직을 연금사업실 아래로 통합했다.
향후 지점 영업망을 활용해 DC형 및 개인형 IRP 중심으로 퇴직연금 성장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현대차증권이 2024년 말 기준 DC형 퇴직연금(원리금 비보장형)에서 최근 1년 수익률 11.84%로 증권업계 2위에 오른 점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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