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시작되면서 가상화폐 시장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이은 세 번째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가 예상되는 등 금융기관의 가상화폐 시장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이외에도 관련법 정비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가상화폐가 미국 제도권 진입에 더욱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이에 국내 가상자산 업계도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 법·제도를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주목하고 있다.
◆ 뛰어가는 미국 기어가는 한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틀만인 지난 22일 가상자산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진 않았지만 TF는 공청회를 열어 업계 의견을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 관련 기관과 협력해 비트코인 현물 ETF와 같은 가상자산을 기초로 한 금융상품 출시가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또한 가상자산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보유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가상자산을 새로운 금융 생태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게 하려는 의도다.
미국의 발 빠른 움직임에 비해 국내에서는 가상자산 법제화 논의가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속도감 있는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안유화 성균관대 금융학과 교수는 "미국이 나선만큼 국내도 빠른 입법과 정책 제도화를 실행해야 하는데 규제가 너무 심하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는 상태"라며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도 가상자산에 대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한국이 금융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적 지향점이 돼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자산 산업이 태동시기인 만큼 기본 구축을 해 놓고 실행을 하면서 나오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급한 2단계 입법…가상자산 유형별 차등 규제 필요
금융감독원은 수년간 가상화폐 관련 법안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지난 2024년 7월에야 겨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1단계 법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해당 법에는 ▲이용자 예치금 및 가상자산 보호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임의적 입출금 차단 금지 ▲가상자산 범위 ▲대체불가토큰(NFT) 가이드라인과 같은 기본적인 규제로 시장의 안전망을 우선적으로 구축했다.
시장에서는 가상화폐 시스템의 제도권 편입이 투자자 보호와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동시에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2단계 입법 발의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1단계 관련 법은 이용자 보호에만 집중된 법안으로 앞으로 만들어져야 할 2단계 입법에서는 다양한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필요성을 알고 있는 정부와 업계에서는 2단계 입법 안에 사업자·시장·이용자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법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핵심 내용으로는 ▲코인발행과 관련한 규제 ▲발행 공시 의무 ▲코인에 대한 정의 ▲법인계좌 허용 등 이용자보다는 사업자 중심의 안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는 국내 가상화폐 법제가 유럽연합(EU)의 암호자산시장에관한법률(MiCA)처럼 사업자와 거래 인프라를 한 법률에서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통합법 체계를 지향한다는 입장이다.
MiCA에는 ▲가상자산 유형별 차등 규제 ▲암호자산서비스제공자(CASP) 규제 ▲시장 남용 방지 ▲백서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모든 가상화폐 제공자는 당국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자본요건, 고객 자산 분리 보관, 경영진 평판 등 내부통제 요건 등도 포함돼 있다.
국내 시장도 가상화폐 자체를 위한 기본법 형태를 띠고 있는 MiCA를 적극 참고할만하다. 이를 통해 암호자산을 일반 자산, 스테이블코인, 전자화폐형 자산 등으로 분류하고 각 유형별 특성을 반영한 차등 규제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정책과 금융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발행자 요건과 유동성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가상화폐 거래소와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거래소 운영의 투명성 확보와 고객 자산의 안전한 보관, 이해 상충 방지 등 소비자 보호 중심의 규제도 추가로 도입될 필요가 있다.
특히 투자자 보호를 위해 백서 작성 및 공시를 의무화하고, 허위 내용에 대해 민사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MiCA의 접근법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와 학계의 시각이다.

◆ 반응하는 금융당국
이러한 목소리에 국내 금융당국도 반응을 보이고 있다.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국내 가상자산 제도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특히 법인에 가상자산거래소 실명 계좌를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인의 실명계좌 허용은 법인이 가상자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가상자산 투자부터 가상자산으로 판매대금 결제, 신규사업 개시 등 다양한 사업영역이 확대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그간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 쪽에 무게를 뒀으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가상화폐 산업 육성과 투자자 보호 두 가지 균형점을 고려해 제도화하는 부분에 대해서 빠르게 준비하겠다는 설명이다. 다만 구체적인 조치나 방향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스테이블코인과 기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1단계 입법에서 반영되지 못한 부분들도 면밀히 살피겠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이 단순히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이제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나쁜 것'이라고 외면하기에 글로벌 시장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합리적이고 촘촘한 규제를 통해 투자자는 보호하고 건전한 사업자는 육성해야 할 시기"라고 밝혔다.
◆속도만이 답은 아니다…"기준 명확해야"
다만 일각에서는 2단계 입법이 서둘러 추진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는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억제하고 시장 참여자의 부담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단순 규제 강화가 아니라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적절한 유연성을 포함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동시에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2단계 입법의 핵심은 가상자산의 특성과 시장의 혁신성을 인정하면서 투자자 보호와 건전한 시장 질서를 구축하는 제도화를 들 수 있다. 이는 단기적인 안정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의 가상자산 산업을 확대시키는 기반이 될 것이란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 산업의 성장 및 글로벌 시장 확대 속도에 비해 국내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국내 가상자산 규제가 불분명한 것이 많고 특히 태동 단계의 산업이다 보니 일반인들의 자문에 의해 시장 변동성이 큰 만큼 업태(자문업, 운용업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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