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성과급 배분을 두고 사측과 격한 갈등을 벌인 삼성전자 노조. 업계가 주목한 점은 달라진 파업 방식이다. 막연히 더 달라는 게 아니라, 보상 기준을 제도화해 예측 가능하게 만들라는 구체적 요구였다. 협상은 타결됐지만 이 방식이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면서 노사 협상의 판도가 달라지는 모습이다.
업계에 따르면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지난 2024년 2월 출범 당시 정치색이나 상급단체 없이 조합원 실익 중심으로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 대비 처우 격차에 불만이 쌓인 DS부문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넓힌 결과, 지난해 9월 6000여명에 불과했던 조합원이 지난달 7만6000여명으로 불어나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법적 과반 노조 지위를 획득했다. 1991년생인 최승호 위원장을 비롯해 2030 젊은 직원들이 주축이 된 노조가 이념보다 실리로 세를 불렸다는 평가다.
이번 협상도 그 연장선이었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제도화하고 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더 많은 보상을 원하되, 그 기준을 문서로 못 박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DS부문에 집중한 나머지 함께 연대했던 동행노조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수원지부 집행부가 등을 돌릴 정도로 철저히 조합원 실익을 앞세웠고, 결국 상한 없는 특별경영성과급 신설과 향후 10년간 적용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조성기 노무사(노무법인 승)는 "조합원들의 실익을 극대화하면서도 적자 사업부까지 함께 챙기는 방식으로 다수 노조로서의 지지를 유지한 것"이라며 "치밀하게 전략을 짜고 짜임새 있게 끌고 간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과거 이념 중심의 노동 운동은 이제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앞으로 MZ세대와 그들의 실리 요구가 노사 관계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조의 실리 요구가 오히려 사측 입장에서는 협상을 단순하게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보상 기준을 놓고 벌이는 숫자 싸움인 만큼 성과급 규모만 맞추면 매듭지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번 파업에서는 천문학적 경제 손실 우려가 부각되면서 여론과 정치권 모두 조속한 갈등 해소를 촉구하는 분위기였다.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온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첫 대규모 파업 위기를 비교적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송승준 노무사(노무법인 인사이트)는 "현대차 쪽은 30~40년간 셧다운까지 겪으며 노조를 상대하는 경험을 쌓았지만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다 처음으로 큰 사태를 겪은 것"이라며 "파업 없이 돈으로 해결했다면 더 넓은 관점에서 회사는 큰 이익"이라고 평가했다.
조 노무사는 "SK하이닉스라는 선례가 있는 상태에서 이념이나 정치색 없이 숫자 협상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에 총파업 전 합의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노사 합의는 한번 하면 항상 더 올라가는 것"이라며 "차후 협상에서도 더 좋은 조건만 요구할 것이고, 결국 파업이라는 압박에 밀려 이뤄진 합의인 만큼 후폭풍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노사가 잠정합의에 이르면서 예고된 파업은 일단 유보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거진 노노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산업계 전반으로 같은 요구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이달 20일 카카오 노동조합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파업 수순에 들어갔다. 카카오 본사를 포함한 5개 법인에서 진행한 파업 찬반투표가 모두 가결됐다. 성과급 기준 공개와 보상 체계 투명화가 핵심 요구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전자 노조는 22일 오후 2시부터 '2026년 임금·단체협약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시작했으며, 오는 27일 오전 10시에 마감한다. 이날 오후 5시30분 기준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의 총 선거인수 5만7290명 중 3만2882명이 참여해 투표율 57.40%를 기록 중이다. 기권수는 0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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