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태민 기자] 넥슨은 창사 이후 대형 인수합병(M&A)과 퍼블리싱을 바탕으로 몸집을 빠르게 키워 왔다. 그러나 역량 있는 외부 개발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온 만큼 자체 개발력 측면에선 아쉬움을 사 온 것도 사실이다.
2010년대 들어 '던전 앤 파이터'의 아성을 이을 차기작이 장기간 나오지 않으면서 자체 개발력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넥슨은 2020년대 들어 개발 리더십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핵심 지식재산(IP)의 경쟁력은 지키면서 사업 실행력은 높이고, 글로벌 게임사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9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넥슨은 최근 패트릭 쇠더룬드 엠바크스튜디오 대표를 초대 회장으로 추대한 후 사업 방향을 재정비 중이다. 넥슨이 고(故) 김정주 창업주 이후 회장직을 마련한 건 처음이다.
◆외형은 커졌지만 약해진 내부 개발력
그동안 대형 M&A와 퍼블리싱을 무기로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자체 개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리더십 전환으로 해석된다. 넥슨은 2004년 위젯을 시작으로 엔텔리젼트, 두빅, 네오플, 실버포션, 시메트릭스 스페이스, 엔도어즈 등 국내외 유망 개발사를 잇따라 인수했다. 그 무렵 개발력에 투자하던 경쟁사들의 행보와 사뭇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당시 넥슨 개발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정상원 전 대표가 회사를 떠나면서 그를 따르던 핵심 개발 인력들도 대거 이탈했다. 이를 반영하 듯 넥슨의 퇴직금은 ▲2002년 9300만원 ▲2003년 1억9500만원 ▲2004년 2억원 등으로 3년새 2배 이상 급증했다.
개발자 이탈은 넥슨의 장기 개발력 저하로 이어졌다. 넥슨의 황금기로 꼽히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게임들이 자체 개발작이 아닌 '메이플스토리'(위젯 개발)와 '던전 앤 파이터'(네오플 개발)였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2010년대 들어 자체 개발작을 연이어 출시했으나 2010년 '마비노기 영웅전', 2011년 '사이퍼즈'로 체면을 차리는 데 그쳤다.
이에 김 창업주는 '던파' 개발에 앞장섰던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를 2019년 고문으로 영입해 개발 전반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러나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등 허 전 대표가 개발에 관여한 게임들이 흥행에 실패하며 2024년경 사실상 결별했다. 게임성을 보는 안목은 확실했으나, 개발력 향상이나 수익성 창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북미유럽 공략 난제…쇠더룬드 체제로 돌파구
이 무렵 넥슨에게는 '북미유럽시장(서구권) 공략'이라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2006년 '컴뱃암즈'(두빅 엔터테인먼트 개발)로 서구권 진출 밑바탕을 다진 이후 뚜렷한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2023년 '데이브 더 다이버'가 있긴 했지만 철옹성을 뚫기엔 한계가 있었다.
2015년 오웬 마호니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넥슨재팬 대표로 임명한 것도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일렉트로닉 아츠(EA) 경영기획담당 수석부사장 출신으로 재무 관리와 M&A에 능했다. 게임 개발보다도 산업의 흐름을 읽고, 재무 및 투자 관점에서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비(非) 개발자 출신의 한계였다.
허 전 고문 실각 이후엔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를 필두로 개발 역량 향상에 집중했다. 그러나 서구권 게임시장의 벽을 뚫기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2023년 '데이브 더 다이버'(민트로켓 개발), 2024년 '퍼스트 디센던트'를 연이어 출시하며 북미유럽 시장에 공을 들였지만 인지도를 각인시키는 데 그쳤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넥슨은 지난해 엠바크스튜디오의 '아크 레이더스'에서 희망을 봤다. 마호니 전 대표가 투자를 적극 주도했던 곳이었다. 지난 1월 기준 누적 판매량 1400만장, 최고 동시접속자수 96만명을 기록했다. 당초 넥슨 내부에서 예측했던 손익분기점(BEF)을 웃돈 수치였다.
'아크 레이더스' 흥행 이전엔 '더 파이널스'가 있었다. 더 파이널스는 2023년 12월8일 출시돼 2주 만에 누적 이용자 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북미유럽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슈팅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창의성, 전략성이 강점으로 꼽혔다.
출시 직후 스팀 동시접속자수 24만명대를 기록하다가 2달 만에 5만명대로 하락하는 등 장기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개발 역량과 넥슨과의 시너지는 입증한 셈이다. '더 파이널스'의 한계로 지목됐던 팀원 간 높은 의존도 문제는 '아크 레이더스'에서 다듬으면서 장기 흥행 초석도 다졌다.
넥슨으로선 쇠더룬드 대표를 새로운 리더로 앞세울 명분이 충분해진 셈이다. 허 전 고문과 마호니 전 대표가 각각 안고 있던 한계를 메꾸면서 서구권 공략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단순히 그룹의 최정점에 올리는 것을 넘어 회장직을 신설한 건 자체 개발력 향상과 서구권 안착이라는 '두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달리 말하면 그동안 구사해 왔던 대형 M&A와 퍼블리싱 중심 성장 공식에서 벗어나 개발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체질 개선 방식과 '엠바크 DNA'의 이식 방향이 쇠더룬드 회장 체제의 성패를 가를 핵심 관건이 될 전망이다. 김 창업주 이후 새로운 챕터를 맞이한 넥슨의 행보에 게임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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