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자동차의 고성능차 개발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다. 과거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품질은 별로지만 가격이 저렴한 차, 이른바 '저가 깡통차'로 취급 받던 만큼 박리다매의 판매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현대차가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고 장기 생존하기 위해서는 쇄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프리미엄·고성능 차량을 개발해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한편, 이를 통해 '제값받기' 전략으로 수익성을 높인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인 'N'은 정 회장의 이 같은 강력한 의지에서 출발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이던 2010년대 초반부터 고성능차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사전작업에 돌입했다. N 브랜드는 현대차·기아 연구개발(R&D)의 심장인 남양연구소의 영문 머릿글자를 따서 탄생했다.
박준우 현대차 N브랜드매니지먼트실 상무는 18일 열린 'N 브랜드 10주년 기념회'에서 "N 브랜드는 최고 경영자의 컨펌을 받고 시작한 프로젝트"라며 정 회장의 지지를 회상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2012년 고성능차를 개발할 전담 조직 신설을 지시했고, 2014년 현대차의 월드랠리챔피언십(WRC) 첫 참가를 이끌었다. WRC는 세계 3대 모터스포츠 중 하나인데, 현대차는 출전 첫 해 독일 랠리에서 드라이버 부문 1,2위와 제조사 부문 1위에 오르며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특히 정 회장이 직접 현대모터스포츠팀을 이끌고, BMW M 총괄개발책임자인 알버트 비어만을 현대차 고성능차 개발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는 점 등은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현대차가 N 브랜드 론칭을 공식화한 것은 2015년이다. 당시 현대차는 독일에서 열린 'IAA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N 브랜드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는 'N 2025 비전 그란 투리스모'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이후 N 브랜드는 매년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갔다. 2016년 벨로스터 N에 심장 역할을 할 N 전용 2.0터보 엔진을 장착했으며, 독일 24시 뉘르부르크링 내구레이스를 완주하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레이스의 완주율이 절반에도 채 못 미쳤다는 점에서 현대차의 N 브랜드가 내구성을 입증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독일에서 N 브랜드 팬 100명과 함께 i30 N 퍼스트 에디션 출시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고, 2018년에는 독일에 국한돼 있던 N 사업 영역을 한국과 미국 등으로까지 확장시켰다.
특히 현대차는 WRC 진출 5년 만인 2019년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일궜고, 2020년에는 i20 N을 유럽 시장에 출시했다. 특히 현대차는 중국 베이징모터쇼에서 초고성능 전기차 실증 모델인 RM20e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고성능 전기차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RM은 다목적 기술 시험차량에 붙는 명칭으로 일명 '움직이는 연구소'(롤링랩)이라는 의미다.
현대차는 2021년 코나 N과 아반떼 N을 출시하며 N 브랜드 라인업을 총 6대로 늘렸으며, 2022년에는 N 전동화 전략을 가속화할 RN22를 선보였다. 특히 RN22는 팬들의 높은 성원에 실제 양산이 이뤄진 기념비적 모델이기도 하다. 포니 쿠페의 디자인을 계승한 고성능 수소차 콘셉트카 'N비전74'를 통해서는 전동화 비전을 보여주기도 했다.
2023년에는 아반떼 N의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됐을 뿐 아니라 영국 '굿우드 페스티벌'에서 현대차 N 부문 최초의 양산 전기차인 아이오닉 5N이 공개됐다. 지난해에는 일본 토요타와 함께 개최한 '현대 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에서 현대차 전기차 기술력을 총집약한 고성능 롤링랩 'RN24'를 선보였다.
현대차 N 브랜드는 올해 아이오닉 6N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전기 고성능차로 제공하는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단순한 스피드를 넘어 브레이킹, 코너링, 내구성 등 다양한 요소를 업그레이드한 점이 특징이다.
정 회장의 이 같은 뚝심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3위 완성차 업체로 도약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성능 전용 브랜드는 완성차 업체의 자신감을 대변하는 데다, 실제 각종 모터스포츠 대회를 석권하면서 압도적인 품질력을 인정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정 회장은 N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해 고삐를 더욱 죈다는 계획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CEO)이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현대차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N 브랜드의 미래 비전을 공개했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구체적으로 현대차는 오는 2030년까지 7개 이상의 N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기존 내연기관 모델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 전동화 모델도 대거 포함된다. 특히 한국과 미국, 유럽 시장 중심이던 N 브랜드 진출 국가를 확대해 글로벌 성장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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