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이제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기업의 경영 전략과 산업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글로벌 경영 판도가 바뀌는 지금, 기업과 자본시장에서 AI는 피할 수 없는 핵심 화두입니다. 딜사이트는 '2025 경영전략 써밋'을 앞두고, AI가 자본과 산업, 경영과 투자 전략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조망합니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해법과 기회는 무엇인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에서 완전히 탈피해 모빌리티 시장의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선구안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특히 정 회장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몇 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했는데, 이를 현실화할 기술이 바로 인공지능(AI)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현대차그룹의 AI 혁신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만의 영역이던 AI 기술이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재명 정부의 핵심 산업 정책인 AI 육성책이 활기를 띄는 배경에는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와 인재 육성, 규제 혁신 등의 지원을 전개 중이다. 이에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 내 위상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 미래 전략 중 SDV·로보틱스…AI 기술력 확보가 핵심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가 되기 위해 크게 ▲수소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SDV) ▲로보틱스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SDV와 로보틱스의 경우 AI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현대차그룹 내 AI 기술만 전담하는 별도 조직은 없지만, 각 핵심 본부마다 전문 인력이 포진해 있다.
현대차그룹이 싱가포르에 설립한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와 미국 조지아에 건설한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AI와 로보틱스 기술력이 집약된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먼저 2023년 준공된 HMGICS는 지능화 생산 체계를 갖춘 현대차그룹 최초의 스마트 팩토리다. 연간 3만대의 전기차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조립 및 검사 공장의 약 70%는 자동화됐으며, 약 200대의 로봇이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동시에 HMGICS는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연구하고 시험하는 테스트베드이기도 하다.
HMGICS는 ▲AI와 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이 고도로 자동화된 셀(Cell) 기반의 유연한 생산 시스템 ▲현실과 가상을 동기화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 기반의 효율적인 생산 운영 ▲데이터 기반 지능형 운영 시스템 ▲인간과 로봇이 조화를 이루는 인간 중심의 제조 공정이 특징이다.
지난해 10월 생산 개시 및 올 3월 본가동에 돌입한 HMGMA는 자율주행 운반 로봇(AGV)과 자율이동 로봇(AMR)을 활용 중이다. 이 덕분에 각 생산라인에서 다양한 차종을 일시에 생산하는 '다차종 유연 생산 시스템'이 구현되고 있다. 차제공장의 경우 이미 자동화율 100%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AI 기반 비전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실시간 품질 검사도 가능하다.
◆ 정의선 회장, 보스턴다이나믹스 투자…AI 학습 덕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
보스턴다이나믹스는 AI와 로보틱스 기술력 확보에 대한 정 회장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회사로, '휴머니티를 향한 진보'라는 비전을 실천할 선봉장이다. 앞서 정 회장은 2020년 사재 2400억원을 털어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을 취득했다. 이어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가 공동 설립한 'HMG Global, LLC'와 현대글로비스가 추가로 출자하며 현대차그룹사로 편입됐다. 현재 보스턴다이나믹스 주주 현황을 보면 정 회장이 21.89%이며 HMG Global, LLC 54.72%, 현대글로비스 10.94%다. 나머지 12.45%는 소프트뱅크가 보유중이다.
정 회장의 선제적인 가치 투자는 이미 성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개 '스팟'은 HMGMA와 기아 오토랜드 광명 등 여러 완성차 공장에 투입된 상태이며,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조만간 HMGMA에 시험 투입될 예정이다.
주목할 부분은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개발한 로봇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실제로 아틀라스가 박스에서 또다른 박스로 부품을 옮기는 작업 중 옆으로 부품이 떨어지자, 아틀라스는 부품을 주워 정확하게 박스에 담는다. 이는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AI 기술 학습으로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로보틱스 앤 AI연구소와의 협업 등 AI 기술 고도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 중요성 확대…AI 내재화가 관건
현대차그룹이 전통적인 완성차 제조사 이미지를 탈피하는 배경에는 급변하는 글로벌 트렌드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의 개념을 넘어선 데다, 기술 발전에 따라 소프트웨어(SW) 기반 모빌리티의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 회장 역시 2019년부터 SDV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빠른 기술 개발을 주문해 왔다.
가장 중요한 골자는 SDV에 생성형 AI를 접목하는 것이다. 운전자의 명령을 AI가 학습하고, 이를 개인화된 경험으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네이버와 함께 대규모 처리 기술을 개발 중이며, 네이버의 생성형 AI 기술인 '하이퍼클로바X'를 적용하기도 했다. 나아가 현대차는 챗GPT를 활용해 자체 생성형 AI '글레오'를 개발하며 자체 기술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력 계열사 현대모비스가 모빌리티 SW 분야 실무형 인재를 채용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와 SDV 솔루션 등 모빌리티 분야 선도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인데, 미래 사업을 이끌 융합형 인재 확보가 선제 조건이라는 이유에서다.
현대차그룹 IT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 역시 SDV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속도를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개최한 테크 콘퍼런스에서는 미래 SDV 전략과 기술 로드맵을 공개했다. 세부적으로 ▲차량 SW 업데이트 자동화 ▲고객 맞춤형 UX 개선 ▲데이터 기반 안전 관리 시스템 ▲통합 전장SW 플랫폼 등인데, 오랜 기간 현대차그룹의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한 만큼 경쟁 우위를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회장은 최근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25년의 모빌리티를 정의할 핵심 요인 중 하나는 SDV와 AI 기술의 융합이고, 주도권을 잡는 기업이 성공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 공장은 SW 중심의 AI, 디지털 트윈 등 차세대 제조 기술을 위한 혁신 허브로 진화하고 있으며, 품질 향상과 인간 중심의 작업 환경 조성을 위해 최첨단 로봇 기술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어떤 미래의 혁신이든, 고객들을 더 스마트하고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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