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승주 기자] 에쓰오일과 이재명 정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양측이 석유화학 사업재편부터 시작해 석유화학 최고가격제 문제에서도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서다. 이 같은 상황에 업계에서는 에쓰오일의 사외이사 구성에 주목하고 있다. 범여권 중심의 인사를 배치해 대관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면충돌 위험을 완화하는 완충지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정부와 '석유화학 최고가격제'를 두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석유화학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 상한선을 두거나 가격 결정 구조를 강제하는 정책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2일부터 6차 최고가격제를 시행, 휘발유 1934원·경유 1923원·실내등유 1530원을 최고가로 설정한 상태다.
이와 관련 정부는 국제 유가 상승기에 정유사들이 횡재초과이윤을 거두고 있어 이익을 분담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대로 정유사들은 사이클 산업의 특성 상 유가 상승 시기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말한다. 특히 유가가 급락할때는 수조 원대의 적자를 기업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기에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이와 관련 방주완 에쓰오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11일 1분기 실적 관련 컨퍼런스콜을 통해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되며 내수 석유제품 판매 가격을 국제 판매 가격과 연동하지 못하고 있어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다"며 "유가 관련 이익을 제외하면 사실상 적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양측이 반대노선을 걷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석유화학 사업재편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현재 산업부는 국내 에틸렌 생산시설 25% 감축을 목표로 3대 석화단지(여수·충남 대산·울산)에게 구조조정안을 제출받고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의 대산프로젝트가 정부 승인 이후 1호 사업재편 절차를 밟는 중이다.
반면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는 양적 감축이라는 정부의 목표에 대척점에 있는 평가를 받는다. 이 프로젝트는 9조3000억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의 스팀 크래커와 TC2C 시설 등을 건립하는 골자로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CAPA)만 180만톤(t)에 달한다. 이를 두고 사측은 사업재편이 단순한 감산보다는 산업 고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에쓰오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현재 석화업계에선 샤힌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는 2027년부터 연간 50만t의 공급 과잉이 생겨 매년 44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지난달에는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에서 이틀 연속 인명 사고가 발생해 에쓰오일의 안전관리 체계와 초기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에쓰오일 사외이사진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성향에 맞춘 전략적 인사를 통해 정부와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방어벽이 되어 주고 있다는 분석에서다.
실제 에쓰오일의 사외이사진은 상당 부분 좌편향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먼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권오규 사외이사는 국민의 정부 시절 부총리와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았던 대표적인 범여권 인사다. 또한 이재훈·고승범 사외이사 역시 각각 참여정부 내각, 문재인 정부 당시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력을 가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관에 특화돼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전환 사외이사는 전 국세청 차장으로 박근혜 정부 당시 사직했으며 강진아 사외이사는 대통령 직속 소부장 경쟁력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소부장 경쟁력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춰 공급망 자립화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사실 관료 출신 사외이사 영입은 에쓰오일만의 오래된 관행이다. 앞서 이 회사는 2021년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사외이사(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며 홍역을 치른적이 있다. 그 이전에는 김철수 전 상공자원부 장관(문민정부), 정문수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참여정부),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명박 정부) 등이 에쓰오일 사외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와 관련 재계관계자는 "에쓰오일은 대주주인 아람코 눈치를 보지 정부 눈치는 잘 보지않는 기업"이라며 "필요할 때는 외국기업인척 하며 정부 방침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장관계자는 "에쓰오일이 현재 정부와 대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 밑에서는 치열한 대관작업을 이어가지 않겠나"라며 "사외이사의 구성이 대관력의 척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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