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유례없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을 해소하고자 차량 5부제가 도입된 지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산업현장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차량 통행량 축소로 유류 소비를 최대한 줄여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방향성에는 다들 동감한다. 하지만 정책적 대의와 현장의 수용성 간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게 요지다.
차량 5부제가 분초를 다투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용하는 현실이 규제의 역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C레벨급 인사들이 시간 단위로 비즈니스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와중에, 5부제 적용일마다 대체 차량을 수배하느라 진땀을 빼는 풍경까지 연출된다고 한다.
차량 5부제의 파고는 보험업계를 정면으로 덮쳤다. 고유가로 인한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분담하는 명분 아래 차량 5부제 참여 차량의 보험료를 연간 2% 할인해주는 5부제 특별약관 출시가 확정됐다. 히지만 이를 실질적인 상품으로 구현해내야 하는 현업 직원들은 밤샘 작업을 이어가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당장 이달 11일부터 5부제 특약 상품 접수가 시작되는 데도, 일부 보험사는 5부제 준수 여부를 검증할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 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당정이 지난 27일 5부제 특약 도입 방안을 발표한 이후 이달 말로 예정된 상품 출시까지 단 한 달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니, 현장의 혼란은 예견된 수순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5부제 특약 도입이 무리한 속도전 양상으로 추진되면서 제도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미 주행거리에 기반해 보험료를 사후 환급 또는 할인해주는 마일리지 특약처럼 대체 수단이 존재하는 데도, 5부제 특약 제도로 인해 불필요한 시스템 구축 비용과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미 수년 전 보험업계에서 자취를 감춘 요일제 특약이 다시 등장한 현실을 두고 황당무계하다는 냉소가 쏟아진다. 당초 요일제 특약은 2010년대 초반 정부의 녹색성장정책 시류에 따라 출시됐던 상품이다. 하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서울특별시, 경기도 등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승용차 요일제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요일제 특약도 자연스레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요일제가 사장된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미세먼지 저감과 에너지 절약이라는 정책의 효과는 당초 기대에 못 미쳤고, 요일제 미준수자들을 걸러내기 힘든 검증 체계의 구조적 한계가 뚜렷했다는 비판이 이를 방증한다. 과거 요일제의 오점으로 지목됐던 기술적 결함이 5부제 특약의 한계로 고스란히 재현되는 현실은, 우리의 정치와 행정이 지난 실패가 남긴 교훈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실 5부제가 정치권으로 소환된 배경에는 '가시성'이라는 정무적 판단이 깔려있을 테다. 매일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는 이들에게 자동차 보험 할인은 각인 효과가 뚜렷하고, 정부 입장에서는 차량 5부제 정책의 당위성을 확보할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은 무조건 눈에 띄어야 한다는 해묵은 공식이 현장의 불편을 풍선처럼 키우는 현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하지만 일방통행식 정책은 거센 후폭풍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벌써부터 보험업계에서는 연말 결산을 앞두고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자동차 보험 부문의 적자와 손해율로 기초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5부제 특약 도입에 따른 비용 청구서까지 날아들어 고통이 배가 된다는 것이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2400억원 규모의 보험료 수입이 증발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결국 보험사의 손실은 보장 축소와 요율 조정이라는 연쇄 반응을 일으켜 소비자의 편익을 갉아먹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5부제 특약 제도가 본래의 취지대로 순항하기를 바라지만, 예견된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이번 사례는 보여주기식 정책의 답습을 끊어낼 명백한 '오답 노트'로 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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