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동선이 크래프톤의 인공지능(AI)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과 젠슨 황 CEO가 배틀그라운드 이용자 행사를 함께 찾으면서 양사의 협력 범위가 게임 AI를 넘어 로보틱스와 자율주행까지 확장되는 흐름이 부각됐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지난 7일 서울 강남구의 한 PC방에서 PUBG 팬 이벤트를 열고 엔비디아와 공동으로 개발 중인 AI 기반 게임 경험을 공개했다. 행사에는 장병규 의장과 장태석 PUBG IP 프랜차이즈 총괄, 이강욱 크래프톤 최고AI책임자(CAIO)가 참석했다. 젠슨 황 CEO도 현장을 찾아 장 의장과 별도 만남을 가졌다.
◆ PUBG 엘라이로 협업 성과 가시화
현장에서 공개된 핵심은 PUBG 엘라이(PUBG Ally)다. PUBG 엘라이는 엔비디아 에이스(NVIDIA ACE) 기술 기반의 온디바이스 소형 언어모델을 활용한 협업 가능 캐릭터(CPC)다. 기존 게임 속 NPC가 정해진 행동과 대사를 반복하는 방식이었다면 PUBG 엘라이는 이용자와 함께 움직이고 상황을 판단하며 플레이를 보조하는 AI 동료 캐릭터에 가깝다. 크래프톤은 PUBG 엘라이를 6월 중 배틀그라운드 아케이드에서 베타 서비스로 선보일 계획이다.
장병규 의장은 행사에서 "크래프톤이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배틀그라운드와 함께해 준 팬들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크래프톤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게임뿐 아니라 AI 영역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단순 팬미팅보다 기술 협력의 성격이 짙었다. 현장에서는 RTX 스파크(RTX Spark) 플랫폼에서 구동되는 배틀그라운드와 PUBG 엘라이 시연이 진행됐다. 양 사는 배틀그라운드와 인조이 등 크래프톤 주요 타이틀의 RTX 스파크 플랫폼 최적화를 위한 기술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게임 성능 개선과 AI 기능 고도화를 동시에 겨냥한 협업이다.
◆GPU 인프라로 'AI 퍼스트' 속도
크래프톤은 이미 회사 차원의 AI 전환을 공식화한 상태다. 2022년 AI 전담 조직인 딥러닝 본부를 세운 뒤 최근 조직을 '크래프톤 AI'로 확대 개편했다. 지난해에는 'AI 퍼스트' 기업 전환을 선언하고 AI를 개발 체계와 업무 방식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내년까지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엔비디아 B300 기반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2026년부터는 매년 300억원 규모 예산을 편성해 임직원의 AI 툴 활용과 업무 적용도 지원한다. 단순 연구조직 확대가 아니라 회사 운영 방식 자체를 AI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외부 연합에도 참여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SK텔레콤이 주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해당 컨소시엄은 5000억개 매개변수 규모의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목표로 한다. 게임 제작과 서비스 과정에서 쌓은 AI 기술을 범용 모델 개발과 연결하려는 시도다.
◆로봇·자율주행까지 전략 확대…중장기 신사업 낙점
크래프톤이 새롭게 힘을 싣는 영역은 피지컬 AI다. 올해 초 로보틱스 연구법인 루도 로보틱스(Ludo Robotics)를 설립하고 휴머노이드 로봇 AI 연구를 시작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는 피지컬 AI 기술 공동개발 협약을 맺고 합작법인 설립까지 추진 중이다. 지난해 4월에는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를 포함한 주요 임원진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엔비디아 본사를 방문해 젠슨 황 CEO와 로보틱스 분야를 포함한 차세대 기술 협력 방향을 논의했다.
쏘카와의 자율주행 협력도 같은 축에 놓여 있다. 크래프톤은 쏘카에 650억원을 투자해 주요 주주로 합류하고 1500억원 규모 자율주행 법인에도 핵심 투자자로 참여하는 구조를 짰다. 쏘카의 이동 데이터와 크래프톤의 시뮬레이션·AI 역량을 결합해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를 노리는 방식이다.
크래프톤의 강점은 하드웨어 제조보다 소프트웨어 지능에 있다. 게임 속 AI 동료 캐릭터가 이용자의 명령과 주변 상황을 해석해 움직이는 구조라면, 이를 현실 공간으로 확장했을 때 로봇이나 자율주행 시스템의 판단 알고리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가 피지컬 AI를 중장기 신사업으로 낙점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다만 성과 검증은 이제부터다. 게임 AI는 이용자 경험 개선과 콘텐츠 차별화로 이어져야 하고, 로보틱스·자율주행은 안전성 검증과 산업 파트너십이 필수다.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기술 신뢰도를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지만 실제 매출 모델과 상용화 속도는 별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톤은 게임에서 쌓은 상호작용 기술을 현실 산업으로 옮기는 실험을 하고 있다"며 "PUBG 엘라이는 게임 AI의 사례지만 그 방향은 로봇과 자율주행의 지능형 소프트웨어로 확장되는 구조에 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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