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경쟁자를 동반자로 만드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을 뒷배로 둔 제네럴모터스(GM)와 손을 잡으며 현지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이다.
업계는 현대차그룹이 '한미 동맹'을 맺은 배경에 정 회장의 결단이 주효했다고 평가한다. 미래차 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독자생존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데다, 미국의 경우 현대차그룹 전사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핵심 시장인 만큼 공격적인 전략을 세웠다는 분석이다.
◆ 현대차, 작년 9월 MOU 이후 구체적 생산 계획 발표
7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이날 현대차와 GM은 총 5개 차량을 공동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정 회장이 메리 바라 GM 회장과 만나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지 11개월 만이다. 당시 정 회장은 "현대차와 GM이 글로벌 주요 시장과 차량 세그먼트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회를 탐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양사의 전문성과 혁신적 기술을 바탕으로 고객 가치를 제고하겠다"고 강조했다.
세부적으로 현대차와 GM은 ▲내연기관·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모두 탑재할 수 있는 중남미 시장용 중·소형 픽업, 소형 승용·SUV 4종 ▲북미 시장용 전기 상용 밴 등 총 5종의 차세대 차량을 개발하게 된다. 이르면 오는 2028년 중남미용 신차 출시가 이뤄질 예정인데, 본격적인 양산에 따라 양사는 연간 약 80만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기존에 밝힌 대로 현대차는 소형 차종 및 전기 상용밴 플랫폼 개발을 주도하고, GM은 중형 트럭 플랫폼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 또 공통의 차량 플랫폼을 공유하고, 각 브랜드 정체성에 부합하는 내외장을 만든다.
특히 양 사는 북미와 남미에서 소재, 운송, 물류에 관한 공동 소싱 이니셔티브도 추진할 예정이다. 원자재와 부품, 복합 시스템 등의 영역에서도 협력을 고려 중이다. 나아가 추가적인 공동 차량 개발과 파워트레인 시스템 전반에 걸친 협업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 '대형·픽업' GM'-'소형·친환경' 현대차 약점 보완 관측
현대차그룹이 GM과 연합전선을 꾸린 표면적인 이유로는 '생존'이 꼽히고 있다. 글로벌 미래차 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중국 등 신흥 강자들이 급부상하고 있는 반면,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폭스바겐그룹의 경우 중국 내 판매가 급감하면서 독일 현지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임금을 삭감했다.
이에 현대차그룹과 GM은 서로가 가진 각기 다른 강점을 활용해 글로벌 완성차 시장 내 입지를 단단하게 굳히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글로벌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폭스바겐그룹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5위지만, 미국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다져놓은 GM 역시 토요타를 따돌릴 수 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 친환경차 관련 노하우는 전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지만, GM의 경우 친환경차 기술력이 약하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대형차와 픽업 트럭군에서 기술력이 다소 부족하고, GM은 해당 부문에 특화돼 있다. 양 사가 협력하면 기존의 부족한 부문을 채울 수 있는 만큼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더해 현대차그룹의 경우 관세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모든 완성차는 15%의 관세가 부과된다. 당초 부과된 25%에 비해 부담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연간 기준 5조원 안팎의 관세 손실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GM과의 협력으로 현지 생산 물량을 늘리면서 이를 일부 보전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 정 회장, 수소차 대중화 위해 日 토요타 회장 회동 '적극 행보'
정 회장의 '오월동주' 리더십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정 회장은 지난해 9월 GM과의 MOU에 이어 그해 10월 일본 토요타그룹과 '현대 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당시 정 회장은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그룹 회장과 직접 만나 협업 의지를 공식화했다.
현대차그룹과 토요타그룹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수소 모빌리티 분야에서의 동맹을 약속했다. 양 사 시너지가 극대화되면 수소차 대중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인프라 개선에 따른 수요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정 회장은 약 한 달 뒤 일본을 찾아 아키오 회장과 두 번째 공식 회동을 가졌는데, 직접 수소 협력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업계는 정 회장이 글로벌 완성차 기업과의 추가적인 협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뿐 아니라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신흥 주요국에 투자를 지속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은 설득력을 높인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GM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다양한 세그먼트 영역과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더 나은 가치와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고객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디자인, 고품질, 안전 지향의 차량과 만족할 만한 기술 등을 더욱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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