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 안위와 경제 주권을 지킬 전략 자산이자, 꺼져 가는 제조업에 다시 불을 지필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로봇 전쟁의 골든타임을 사수할 마지막 승부수는 결국 낡은 규제를 걷어낸 '특구(特區)'에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테슬라 '옵티머스'와 맞붙을 현대차그룹 '아틀라스'부터 생존을 위해 로봇 기업으로 변신하는 부품사의 사투, IPO(기업공개)와 동반성장펀드로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의 흐름까지 치열한 로봇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야심작이자 '정의선 로봇'으로 불리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한국산(産) 라벨을 붙일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첨단기술을 통제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 완제품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이 글로벌 로봇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생산 환경 조성에 관해서도 선제적인 대비책을 마련해 둬야 한다는 분석이다.
◆ 군사용 로봇 개발 이력 탓 '아틀라스' 해외 생산 불가
1일 재계와 로봇업계 등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나믹스(BD)의 아틀라스는 원천적으로 해외 생산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차그룹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BD의 하이엔드 로봇 기술이 국가 안보 기술로 규정된 만큼 인수 계약 당시 기술 유출이 어렵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2020년 12월 BD 최대주주이던 소프트뱅크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는데, 최종적으로 딜클로징(거래종결)이 된 시점은 약 6개월 뒤인 2021년 6월21일이었다. 선결조건으로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CFIUS는 BD가 보유한 로봇 기술 현황과 한국 기업으로의 인수가 미국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세밀하게 따진 것으로 전해진다. BD는 1992년 설립된 이후 미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으며 군사용 로봇을 개발해 왔다. 이 회사가 선보인 4족보행 로봇 '빅도그'와 '리틀도그', '치타' 등은 모두 미 국방부의 조사·개발기구 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의 자금 지원을 받아 개발됐다. 때문에 BD는 한때 '군사로봇 개발 전문 업체'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BD의 경우 천문학적 규모의 개발 비용이 투입된 데 반해, 상용화 시점이 늦어졌다. 미국 구글과 일본 소프트뱅크가 BD 경영권을 되판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이 같은 이유로 CFIUS는 충분한 투자 여력을 갖춘 현대차그룹의 BD 인수를 허용하면서도, 추후 상황에 대비해 미국에서만 제작 가능하다는 일종의 보험을 들어뒀다는 분석이다.
◆ 美, 전략·첨단기술 유출 봉쇄…로봇 패권 경쟁 우위 목적
미국은 첨단 기술 유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거대한 제도 장벽을 세워두고 있다. 예컨대 미국 수출관리규정(EAR)은 군사적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전략기술과 첨단산업 기술의 확산을 통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미국산 기술과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이거나, 직접적인 수출통제 대상 기술이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경우에 EAR 적용 대상이 된다. 미국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은 미 국무부가 관할하는 방산물자와 기술 데이터의 수출 통제가 골자다.
BD가 미국의 로봇 전략과 방향을 수립하는 민간 싱크탱크의 핵심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미국 특별경쟁연구프로젝트(SCSP)는 최근 '첨단제조 로봇 국가안보위원회'를 출범하고 미국이 로봇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할 계획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위원회는 BD를 비롯해 엔비디아, AMD, GM, 미시간대학, 오하이오 주립대학, MIT 산업성능센터 등이 위원단을 꾸린다.
SCSP가 로봇 국가안보위를 신설한 주된 배경에는 정부 차원의 로봇 산업 육성이 자리 잡고 있다. 로봇 산업이 인공지능(AI)에 이어 글로벌 패권 경쟁의 새로운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은 여러 가지 이유로 BD의 아틀라스 제조 기술을 미국 본토 외부로 반출할 수 없다. 제조 단계에서부터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비대칭적 관계'인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새만금에 4000억원을 투자해 조성하기로 한 로봇 클러스터를 두고도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고 있다. 하이엔드 로봇의 최종 조립이 이뤄지지 않는 만큼 단순 범용 부품을 만드는 저부가 가치에 그칠 수 있다.
◆ 한-미 생산 이원화·압도적 부품 공급망 구축 필요성
업계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로봇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국내 로봇 생태계 강화를 추진 중인 만큼 로봇 생산 구조를 이원화해 한국이 제조 밸류체인을 확보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로봇 '지능'에 해당하는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SW) 기술 미국에서 주도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몸'에 해당하는 프레임과 액추에이터, 모터 등 하드웨어를 전담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아틀라스에 필요한 핵심 부품의 공급망(GVC)를 독점하는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성능을 좌우하는 센서와 감속기 등의 생산을 한국에서 맡게 되면 공급망 경제성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외교적 돌파구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 간 기술 동맹이 개별 기업의 의지 만으로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BD 아틀라스 생산과 관련된 세부적인 계약 사항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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