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보험업계가 이달부터 5세대 실손 의료보험 판매에 나섰지만, '손해율 정상화'라는 제도의 효과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모습이다. 보험료를 크게 낮춘 5세대 상품으로 기존 우량 보험 가입자들이 대거 이동하는 반면, 비급여 항목을 과잉 이용하는 고위험군은 기존 1·2세대 보장 체계에 잔류하는 현상이 심화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손보험의 핵심인 위험분산 구조상 저위험 가입자의 이탈이 가속화할 경우, 기존 계약군의 위험 집중도가 높아져 손해율이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비급여 진료비 표준화와 보험료 산정의 자율성 강화 등 보완책이 병행되지 않는 한, 5세대 실손보험 제도의 실효성을 살리기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DB손해보험을 비롯한 손보사 9곳과 삼성생명·교보생명 등 생보사 7곳은 이달부터 5세대 실손보험을 판매 중이다. 5세대 실손은 기존 1·2세대에 비해 보험료가 절반 이상 저렴하고, 4세대와 비교해도 약 30%의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나 가입자의 비용 부담을 크게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5세대 실손은 가입자의 과도한 비급여 이용을 억제하고 보험사의 지급 부담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둔다. 세부적으로 비급여 보장을 비급여 중증·비중증으로 이원화하고, 비중증 비급여 치료에 한해 자기부담률을 기존 30%에서 50%로 상향 조정하도록 설계됐다. 또 과잉 진료 우려를 키웠던 도수치료 등 골격계 이학요법과 체외충격파 치료 및 비급여 주사료, 기타 미등재 신의료기술을 비중증 비급여 보장 항목에서 제외했다.
시장에서는 5세대 실손 전환이 가속화하면 실손보험 판매 비중이 높은 현대해상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손해보험협회 집계 결과, 2025년 하반기(직전 3개 회계연도 신계약 기준) 실손보험 취급사 11곳 중 현대해상의 보험금 지급건수는 73만522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삼성화재(59만6742건), DB손해보험(54만921건) 순이었다.
이는 실손보험 보유 계약 규모가 큰 보험사일수록 비급여 청구 억제에 따른 손해율 개선 효과를 상대적으로 크게 누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4세대 합산 실손보험 위험 손해율은 119.3%로 집계됐다. 이는 보험사가 보험료 100원당 약 119.3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해 손실이 발생했다는 의미와 같다. 보험영업만 놓고 보면 적자 구조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작 보험업계에서는 5세대 실손 상품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부족하다는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저위험 가입자만 신규 상품으로 이동하고, 고위험군은 기존 상품에 남는 이른바 '역선택'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특히 비급여 비중증 치료를 집중적으로 이용해온 가입자들의 경우 자기부담금이 높아진 5세대 상품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A 보험사 관계자는 "대개 실손보험 손해율은 비급여 비중증 보장 부문에서 크게 상승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중증 치료를 집중적으로 이용해온 가입자들이 자기부담금이 높아진 5세대로 옮겨갈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며 "5세대 실손 상품이 보험사 손해율 개선에는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비급여 청구 실적이 적은 이른바 우량 고객들이 보험료가 저렴한 5세대로 갈아타게 되면, 보험사의 전체 수입 보험료 규모도 쪼그라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량 고객들이 납부해온 보험료를 기반으로 유지되던 위험분산 구조가 약화되고, 고위험 계약 중심으로 기존 포트폴리오가 재편되면서 손해율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논리다.
B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5세대로 넘어가면 보장 범위가 축소돼 보험금 지출 통제 여력이 확대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5세대 실손은 전체적인 실손 보험료 볼륨을 축소시킬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5세대 실손보험 제도 안착을 위한 선결 과제로는 '비급여 관리 가이드라인 수립'과 '요율 인상의 합리화'가 꼽힌다. 세부적으로 보험연구원은 ▲체외충격파·증식치료 등 구(舊)비급여 항목의 재평가 추진 ▲비급여물리치료·비급여주사제 등 과잉 진료 우려가 큰 항목의 관리급여 지정 ▲해외사례에 기반한 비급여 가격 상한선 마련 및 비급여관리법 마련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보험 요율의 경우 1~4세대 실손보험 보험료 산정 방식 개선이 거론된다. 현재 보험료 인상폭이 연간 ±25%로 묶여있는 규제를 완화하고, 급등한 손해율 만큼 보험료를 현실화해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을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는 보험사가 기존 1·2세대 가입자들의 5세대 전환을 무리하게 독려하기보다, 5세대 신규 가입자 확보에 집중해 실손 포트폴리오의 구조적 한계를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2009년 이전에 판매돼 의료비 전액을 보장해주는 1세대 실손 가입자들은 고령기에 접어들어 앞으로 4~5년 내 의료 이용이 잦아질 것이고, 이들이 차세대 상품으로 갈아탈 동력이 전무한 게 현실"이라며 "비급여 체계 역시 보건복지부의 소관사항인 만큼, 금융당국이나 보험업계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기 어려워 결국 보험사는 신규 가입자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