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 등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해 신규 원전 건설을 예고한 '원전 르네상스' 구상에 속도를 내는 지금이 한국 기업이 시장에 뛰어들 적기다. 100년에 한 번 오는 기회다."
크리스 콜버트 엘리멘틀 파워 최고경영자(CEO)는 24일 딜사이트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K-전력망과 에너지 안보'를 주제로 개최한 '한-미 전력망 포럼' 패널 토론자로 참석해 "한미 기업이 미국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미국 외 다른 지역에서의 성공도 가능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미국 시장의 규모를 강조하며 "미국 외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로 크다"고 했다. 다만 "미국에서 발자국을 남기고 나면 인구의 95%가 사는 아시아 태평양 시장도 함께 봐야 한다"며 "첫 프로젝트에서 모든 수익을 거두겠다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껏 달아오른 미국 시장에 단기 수익을 걱정하기보다 글로벌 확장의 발판을 다지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날 오전 세션에는 콜버트 CEO를 포함해 존 토메이 메이어 브라운 파트너와 손금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권영희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산업분산에너지 과장이 강연자로 나섰다. 이어 진행된 패널 토론은 배준범 메이어 브라운 파트너가 좌장을 맡아 토메이 파트너, 콜버트 CEO, 손 변호사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오전 세션 첫 강연자로 나선 토메이 파트너는 원전·전력망 풀스택 역량을 바탕으로 팀코리아 차원의 미국 시장 공략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 전력 비용이 빠르게 오르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소형모듈원전(SMR)뿐 아니라 APR1400 같은 대형 원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원전 건설·운영 경험이 풍부한 데다 송전망 구축과 자금 동원 능력에서도 경쟁력을 갖춰 미국 '원전 르네상스 2.0'의 핵심 파트너로 손색이 없다는 얘기다.
이어 콜버트 CEO는 AI로 촉발된 전력 수요 폭증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가운데 원자력 산업을 '건설'이 아닌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SMR이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기술적 청사진을 넘어선 실질적인 실행력과 금융 구조가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라고 설명이다. 에너지 공급을 AI 혁신을 뒷받침하는 인프라 솔루션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빅테크의 재무적 부담을 덜어주는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 강연자로 나선 권 과장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전력망 병목 문제가 심화되면서 분산형 전력망 구축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고 진단했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장거리 송전망으로 수도권에 보내는 중앙집중형 체계로는 급증하는 재생에너지 비중과 지역별 수급 불균형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정부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과 전력 시장 경쟁 원리 도입 등을 통해 전력망 유연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손 변호사는 미국 전력망 현대화가 한국 에너지 기업에 전례 없는 수출 기회라면서도 다양한 리스크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형 원전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입증된 반면 수십조원의 자금이 상당 기간 묶일 수 있는 재무 리스크는 여전하며, 전기사업법 등 국내법과 조달 시스템 정비 등 미국 진출 기업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연에 이어 진행된 패널 토론에서는 미국 원전 시장 진출 시 리스크를 어떻게 분담할지도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원전 사업 리스크를 논할 때 통상 운영비용이나 재무적 리스크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구조를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토메이 파트너는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원전 프로젝트의 리스크는 장비 납품사와 엔지니어링사, 건설 파트너 등 생태계 전체가 나눠 져야 한다"며 "80~100년 수명의 원전을 짓는 만큼 장기 파이낸싱을 안정적으로 끌어오려면 정부나 보험사의 보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콜버트 CEO도 "모든 당사자가 피를 흘렸지만 죽은 사람은 없었다"며 구글과 공동 추진한 원전 프로젝트 사례를 들었다. 그는 "투자수익률(ROI)과 마진을 따지더라도 결국 모든 참여자가 각자의 살을 깎아야 했고, 그렇게 책임을 나눴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며 "무엇보다 초기 설계를 제대로 하고 설계 변경을 최소화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반면 손 변호사는 공평한 리스크 분담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그는 "원전은 짓는 내내 설계가 바뀌는 사업"이라며 "처음 예상한 예산과 준공 때 예산, 이후 수년간 운영하면서의 예산이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프로젝트를 잘 끝내는 것과 수익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는 별개 문제"라며 "미국이 금융 선진국인 관련 리스크를 헤지하는 모델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들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이 단순 수출 마진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미국 공급망의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손 변호사는 "미국 원전 생태계 안에서 코리아팀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투자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며 "경영 지분을 40%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허용해 단순 마진을 넘어 장기적으로 진정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메이 파트너는 "공급망에서 납품사로 참여하거나 파트너십을 통한 비즈니스는 법적으로 큰 이슈가 없지만 오너십 구조로 올라갈수록 리스크도 커진다"며 "관세 변동성도 크게 불확실한 만큼 미국 시장 진출을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단순 납품사나 기술 어드바이저는 책임이 적은 대신 수익도 그만큼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이승호 딜사이트미디어그룹 의장은 개회사에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이라는 새로운 국면과 함께 AI 데이터센터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이라는 거대한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에너지 안보의 핵심 요소로 부상한 전력망을 둘러싼 한미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축사를 전한 서철수 한국전력공사 부사장과 한진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도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적극 독려했다. 서 부사장은 "전력망은 단순히 에너지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 자산"이라며 한전도 축적한 기술 노하우와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내 에너지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한 고문은 "AI 혁명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전력망은 첨단산업의 혈맥이자 국가 안보 자산"이라며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금이 좋은 타이밍인 만큼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계해 한국 기업이 에너지 판도의 주역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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