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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성장펀드 150조와 산업은행의 그늘
딜사이트 김규희 차장
2026.03.20 08:25:12
산은 독점·RWA 비대칭 민간자본 공동화 우려…권한 분산으로 창의성 살려야
이 기사는 2026년 03월 19일 08시 39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김규희 차장] 글로벌 첨단 기술 패권 전쟁의 최전선에서 국가 자본의 전략적 배치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정부가 산업은행을 필두로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첨단전략산업에 투입하기로 한 결정은 이러한 위기 의식의 반영이다. 산업은행이 주축이 된 첨단전략기금 75조원에 민간자본 75조원을 매칭해 거대한 자금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청사진은 국가적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자금의 물줄기가 산업은행이라는 단일 통로로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시장의 역동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시급한 쟁점은 자본 이동의 비대칭성이다. 현재 연기금과 시중 금융지주의 대규모 자금은 국민성장펀드로 급격히 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시장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제도적 유인책에 의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당국은 국민성장펀드 출자분에 대해 위험가중자산(RWA) 비중을 100%로 인정하고 있다. 반면 일반적인 민간 대체투자 건은 통상 400%의 위험가중치가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수치의 격차는 금융사의 자본 적정성 관리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가령 금융기관이 100억원을 국민성장펀드에 출자하면 장부상 위험가중자산은 그대로 100억원으로 계상되지만 다른 민간 펀드에 투자하면 400억원을 투입한 것과 동일한 자본 부담을 지게 된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국민성장펀드 이외의 투자처를 택할 경우 300억원의 자본을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이러한 규제의 비대칭성이 민간 대체투자 시장의 유동성을 고갈시키는 이른바 '빨대 효과'를 유발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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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운용의 질적 측면에서도 우려의 그림자가 짙다. 민간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활용하겠다며 도입한 모펀드 위탁운용사(GP) 제도는 산업은행의 비대한 영향력 아래 그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국민성장펀드가 사실상의 '산은펀드'로 변질되고 있다는 냉소적인 반응마저 감지된다. 산업은행은 그간 정책 자금을 운용하며 모펀드 운용사들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세세한 지침을 제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투자 대상의 설정은 물론 특정 섹터의 비중과 하부 자펀드 위탁운용사(GP)를 선정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산업은행의 의중이 깊숙이 개입된다는 평가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행정적 관성에 기반한 경직된 심사 가이드라인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첨단 산업의 흐름을 포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자칫 15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시장의 유연한 판단을 가로막고 관료적 질서에 매몰될 경우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들려온다.


국민성장펀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할 국가적 과업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해 적기에 효율적으로 자금을 집행하는 것은 국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은행에 집중된 권한과 기능을 민간으로 전향적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간에 실질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하고 시장의 전문성이 투자의 핵심 엔진이 되도록 지배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특정 펀드에 국한된 RWA 특혜를 합리화하여 민간 투자 생태계 전반의 활력을 되살리는 조치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정책 자금이 민간의 창의적 도전을 제약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는 든든한 돛이 되기를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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