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령 기자] "결국 국민들은 국민 AI가 어디가 선정되는지 보다는 공정하지 못한 룰 변경과 절차만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공정한 심판을 봐야할 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고 참가 기업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입니다. "(AI 업계 관계자)
정부가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프로젝트가 1차 평가 이후 '재도전 프로그램'을 꺼내 들면서 정책 신뢰성 논란에 직면했다. 당초 단계별 탈락을 전제로 설계된 국가대표 AI 선발 구도가 네이버클라우드와 NC AI의 동시 탈락으로 흔들리자 정부가 사실상 '패자부활전' 카드를 통해 경쟁 구도 복원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재도전 프로그램이 경쟁을 확장하기보다는 결과에 따라 선발 구조를 수정한 사례로 비치며 정부 AI 정책의 일관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과도한 경쟁으로 후보자들을 극한으로 몰고 제대로 된 기준과 거듭되는 룰 변경으로 피로감이 쌓이면서 '승자 없는' 패배만 남은 독파모 프로젝트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단계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LG AI연구원·SK텔레콤·업스테이지만 2단계 진출을 확정했다. 네이버클라우드와 NC AI는 탈락했다. 동시에 정부는 탈락 팀과 기존 예비 후보군을 대상으로 정예팀 1곳을 추가 선발하는 재공모 방침을 공식화했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이번 재공모는 특정 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정예팀 수가 3곳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경쟁 구조를 복원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당초 독파모 프로젝트는 5개 정예팀을 출발점으로 6개월 단위 평가를 거쳐 한 팀씩 탈락시키는 구조였다. 그러나 1차 평가에서 두 팀이 동시에 탈락하면서 '4강 체제'를 전제로 한 이후 일정이 성립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정부 예산과 임차한 GPU를 놀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기존 3개 정예팀은 즉시 2단계로 진입시키고 재도전 프로그램 참여팀 역시 동일한 GPU·데이터를 같은 기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행정 절차 역시 최대한 단축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같은 설명에도 정책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네이버클라우드 탈락 사유로 제시된 '독자성 기준'이 결과적으로 평가 구조 전반을 뒤흔들면서 사전에 공유된 탈락 로드맵이 사후적으로 수정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독자 AI를 '설계부터 사전학습까지 전 과정을 자체 수행한 모델'로 정의하고 오픈소스 가중치 활용을 사실상 배제한 정부의 잣대가 최종 국면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도 논란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재공모 자체가 '네이버 맞춤형 패자부활전'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됐지만 정작 네이버클라우드는 재도전에 선을 그었다. 네이버클라우드 관계자는 정부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1차 평가 이의 제기나 재도전 프로그램 참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NC AI 역시 같은 입장을 내놨다.
독파모 공모 초반에 고배를 마신 카카오 역시 재공모 불참을 공식화했다. 업계에서는 네이버 사례 이후 '국가대표 AI 탈락'이라는 낙인 효과가 기업 가치와 주가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네이버는 탈락 발표 당일 전일 대비 주가가 5.01% 급락하며 시장의 즉각적인 반응을 경험했다.
기업들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정작 과기부는 부처간 경쟁에서 AI 패권을 잡기 위해 논란만 키울 뿐 제대로 된 대처를 못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류제명 과기정통부 2차관 등이 무리하게 독파모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면서 성과를 내려는 욕심이 오히려 프로젝트를 망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일부 업체는 발표 전부터 패자부활전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미리부터 대관 라인을 강화하는 등 준비를 해왔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에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KT 등 다른 후보군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KT는 자체 개발한 AI 모델 '믿:음 K'가 글로벌 AI 성능 지표인 AAII(Artificial Analysis Intelligence Index)에서 국내 중소형 모델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이에 통신·금융·공공 영역에서의 AI 적용 경험과 한국형 소버린 AI 서사를 강점으로 갖고 있다. 다만 갑작스러운 재공모 일정과 기존 정예팀과의 기술·자원 격차를 고려할 때 참여 여부를 놓고 신중한 검토에 들어간 분위기다.
정부는 추가 정예팀에도 기존 팀과 동일한 GPU·데이터 지원과 'K-AI' 명칭을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동일 조건이지만 이미 6개월간 대규모 실험과 학습을 진행한 기존 3개 팀과 같은 출발선에 서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질적 형평성 논란은 여전히 남는다.
재공모 결과에 따라 독파모 프로젝트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추가 정예팀 선정 과정이 특정 기업 구제 논란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기존 탈락 기업의 재등장이 현실화될지에 따라 정책 신뢰도 역시 크게 갈릴 수밖에 없다. '패자부활전이 아닌 재도전 프로그램'이라는 정부의 설명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결국 누가 다시 링에 오르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독파모 재공모는 경쟁을 확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정부가 스스로 설계한 선발 구조를 뒤집는 모양새"라며 "처음부터 단계별 탈락을 전제로 한 국가대표 AI 선발전이었다면 결과가 불편하다고 해서 패자부활전을 여는 것은 정책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는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독파모 재공모는 형식적으로는 기회 확대처럼 보이지만 이미 한 차례 탈락한 기업 입장에서는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누가 참여하느냐보다 정부가 처음 제시한 경쟁 설계를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험대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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