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유범종 산업3부장] 미국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관세전쟁을 선포했다. 집권 2기에 들어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의지와 함께 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읽힌다. 

특히 글로벌 경제 패권을 두고 중국을 굴복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 동안 미국을 지지했던 우방국에게까지 무차별적인 관세 폭탄을 투하하며 자유무역체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총성 없는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셈이다.

미국의 관세 유탄에서 우리나라 역시 자유로울 순 없다. 미국은 이달 국내 반도체, 자동차, 전자제품 등 주요 수출품들에 대해 90일의 유예기간 이후 25% 상호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유예가 끝나는 오는 7월부터 당장 수출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낸 자료를 인용하면 작년 기준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규모는 1278억달러(한화 약 181조2331억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 총생산(GDP) 대비 비중으로 6.8% 수준이다. 여기에 3국을 통한 우회수출까지 더하면 무려 1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이번 관세정책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만으로 실로 우려가 클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기업들 중에는 자본과 인재 유치 그리고 규제 회피 등을 목적으로 회사의 근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플립(flip)기업'이 부쩍 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한국과의 자유무역을 청산하기 시작했고 수출관세를 덜 내려면 자국에 생산기지를 더 지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특히나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우량 제조기업들의 투자 재원과 인력은 빠른 속도로 한국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내수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지며 국내 경제 전반에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

과거 우리 경제가 가장 위험했던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였다. 거침없이 경제가 승승장구하며 감당하지 못할 부채를 빌려 투자에만 집중하다 나라 곳간이 완전히 바닥난 초유의 사태였다. 당시 기업의 규모를 막론하고 줄도산이 이어지며 엄청난 실업자들이 쏟아졌다. 국내 굴지의 한 기업 경영진은 미국의 관세 부과가 시작되면 국내 경제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기회는 남았다. 이번 주부터 우리나라와 미국의 통상협의가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우선 첫 협의는 미국 측 요청에 따라 워싱턴D.C에서 양국 장관급 인사들의 '2+2' 형태로 진행된다. 우리 측에선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하고 미국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가 나온다.

하나 아쉬운 건 이처럼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 탄핵으로 이를 진두지휘할 사령관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더불어 정부 인사들은 책임지기보다는 눈치보기 바쁘고 정치권은 파벌과 선거 유세에만 몰두해 있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 수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자국의 이익이 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타진하는 것과 비교하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촉각을 다투는 미국과의 통상협의는 국내 경제 향방을 가름할 중요한 변수다. 6월 대선까지는 두 달 가까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지만 소 읽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이 순간부터라도 수장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정부와 정치권이 한마음을 모아 최상의 통상협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전략 수립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