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진욱 부국장] 요즘 80세가 넘으신 부모님들을 만나 뵈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스마트폰 사용을 조금만 하는 것이 어떠시겠느냐고 부탁 아닌 부탁을 드린다.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기자를 보고 바보상자로 여겨졌던 TV를 고만 좀 보라는 잔소리하듯이 똑똑해진 전화기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유튜브 때문이다.
이런 부탁에 부모님들은 "TV나 라디오 뭐를 봐도 재미가 없다. 가장 재미있는 게 유튜브인데 왜 끊으라고 하는 거냐"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들어줄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정말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최근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왜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지 단번에 짐작할 것이다.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도 안되는 것을 사실인양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또한 일부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를 못하고 계신다. 최근 극단적인 정치 상황에서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은 있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확신의 강도는 과거 신문과 방송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유튜브 시대 사실과 다른 혹은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어 실체적인 진실과 거리가 있는 주장들이 너무나 강하고 광범위하게 전파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너무나 강력한 믿음과 확신으로 수용자들에게 받아 들여진다. 아니 강화된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을 하는 것이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 관심사를 분석해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겉보기에는 사용자의 관심을 충족시키는 긍정적인 기능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용자가 이미 선호하거나 믿고 있는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노출해 '확증편향'만을 강화한다.
그 과정은 이렇다. 한 사람이 특정 정치 성향을 지지하는 영상을 시청하면 유튜브는 비슷한 성향의 영상들을 추천 목록에 지속적으로 배치한다. 이로 인해 이용자는 반대 성향의 관점을 접할 기회를 잃게 된다. 자신의 신념이 더욱 굳어진다. 상대 진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구조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유튜브의 알고리즘 현상이 만든 첨예한 결과가 지금 서울 중심가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을 일찌감치 파악한 유럽연합(EU)은 디지털 서비스법(DSA, Digital Services Act)을 통해 유튜브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다. DSA는 플랫폼이 추천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공개하고, 사용자가 알고리즘을 사용하지 않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강제한다. 또한 허위 정보와 혐오 표현을 신속히 제거하는 의무를 부과해 정보의 공정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 플랫폼은 전 세계 매출액의 최대 6%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일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 유튜브 콘텐츠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최근 사태의 흐름을 보면 이러한 분석이 과정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디지털 플랫폼이 자유로운 정보 유통과 표현의 자유를 증진해 민주주의 확산에 많은 역할을 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용자를 잡기 위한 알고리즘으로 인해 극단적인 가치들을 강화해 사회 양극화라는 어두운 면도 함께 가져왔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 DSA는 이러한 요구에서 나온 법안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도 알고리즘 투명성을 의무화하고 허위 정보나 왜곡된 콘텐츠를 빠르게 식별하는 정보 검증시스템 구축 등 책임을 명확히 하는 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어느 나라보다도 디지털 문화가 발달된 한국이다. 한국형 DSA 법안의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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