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태광그룹 오너 이호진 전 회장은 흥국생명·흥국화재 등 금융계열사에 대해 상당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동시에 지배구조 관련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태광그룹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태광그룹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이나 경영권 승계 등에 대비해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문제는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금산분리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다. 비금융계열사가 보유한 금융계열사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의 지배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태광그룹의 금융계열사는 흥국생명,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 등 6곳이다. 이 전 회장은 흥국생명, 흥국증권, 고려저축은행 등 3곳의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하면서 금융계열사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는 타 그룹의 금융계열사 지배구조와 다른 형태를 띄는 부분이다. 예컨대 한화그룹 금융계열사는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수직적 지배구조를 갖췄다. 반면 태광그룹 금융계열사는 보험, 증권, 저축은행 등 업권별로 이 전 회장의 지배력 아래 병렬적 지배구조다.
세부적으로 보면 보헙 계열사의 경우 이 전 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 흥국생명 지분 56.3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흥국생명은 흥국화재의 최대주주(지분 40.06%)다. 흥국생명은 또 법인보험대리점(GA) HK금융파트너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즉, 이 전 회장→흥국생명→흥국화재·HK금융파트너스 순의 지배구조를 갖췄다.
증권 계열사와 저축은행 계열사 역시 이 전 회장이 최정점에 있다. 이 전 회장의 흥국증권 지분은 68.75%다. 흥국증권은 흥국자산운용 지분 72%를 보유하고 있다. 고려저축은행도 이 전 회장이 최대주주로 지분 30.50%를 보유 중이다. 고려저축은행은 예가람저축은행의 지분 65.3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즉, 이 전 회장→흥국증권→흥국자산운용, 이 전 회장→고려저축은행→예가람저축은행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고려저축은행의 경우 이 전 회장의 형사처벌 전력에 따라 금융위원회에서 주식 매각 명령이 나오면서 최대주주가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해 최종 승소하면서 대주주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금융권에서는 이 전 회장의 금융계열사 지배력이 공고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태광그룹 차원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금융계열사 지분 변동이 불가피한 탓이다.
우선 눈여겨 볼 부분은 태광그룹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상출집단으로 소속이 바뀌면 당장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태광그룹이 지배력을 방어하기 위해 티알엔을 지주사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태광그룹은 지난 2018년 지배구조를 한 차례 개편한 덕분에 지주사 전환 작업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 금산분리 규제를 적용받는 만큼 비금융계열사가 보유한 금융계열사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둘 수 없다.
이 전 회장은 티엔알·태광산업·대한화섬 등 비금융계열사의 최대주주다. 비금융계열사를 통해 금융계열사 지배력을 보완하고 있다. 결국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티엔알·태광산업·대한화섬 등이 보유한 금융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면 이 전 회장의 지배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대한화섬과 티알엔은 지난해 말 기준(보통주)으로 흥국생명 지분을 각각 10.43%, 2.91%를 보유하고 있다. 태광산업은 흥국화재 지분 39.63%를, 티알엔은 흥국증권 지분 31.25%를 보유 중이다.
이 전 회장의 금융계열사 지분율이 높아 티엔알 등 비금융계열사가 금융계열사 지분을 외부에 매각해도 지배력에 큰 타격이 없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과거 태광그룹에서 경영권 다툼 등이 일어났던 점에 비춰볼 때 이 전 회장의 장조카인 이원준 씨가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적지 않게 들고 있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원준 씨는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의 장손이다. 2010년에 이 전 회장과 형제·남매 사이에 상속재산 문제로 소송이 벌어졌을 때 함께 소송을 제기하며 이 전 회장과 대립했다. 금융계열사만 놓고 보면 이원준 씨는 흥국생명(14.65%), 흥국증권(2.00%), 고려저축은행(23.15%) 등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태광그룹은 금융사업 외에도 섬유·석유화학, 미디어 등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재계 순위 50위권의 대기업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6월 발표한 '2024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보면 태광그룹은 공정자산 규모 9조6630억원으로 50위에 이름을 올렸다.
공정위는 올해부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선정할 때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10조4000억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태광그룹은 약 7000억원 차이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들지 않고 자산 5조원 이상 요건만 충족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선정됐다.
태광그룹은 전년보다 자산총액이 줄었지만 자산 순위가 두 계단 상승한 데다 여전히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에 근접해 있다. 48위 이랜드까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들었고 49위 한국앤컴퍼니그룹, 50위 태광그룹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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