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고 삼성과 SK, LG, 현대차 등 4대 그룹이 내년 사업 전략 수립에 나섰다. '인공지능(AI) 슈퍼사이클'이 가속화하면서 한국이 강점을 지닌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주요 산업의 지형이 크게 재편될 전망이다. 4대 그룹의 연말 인사도 예년보다 앞당겨 진행되는 모습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그룹 총수들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딜사이트는 기획 시리즈 '4대그룹 내년 사업점검'을 통해 삼성, SK, LG, 현대차 등 주요 그룹이 구상하는 내년 경영 전략과 핵심 과제를 차례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삼성전자가 '뉴삼성' 체제에 시동을 걸었다. 재계 안팎에서는 정현호 부회장의 용퇴와 사업지원실 출범을 두고 8년간 이어진 비상경영이 막을 내렸다는 신호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전면 복귀 기반이 마련됐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총수의 사법리스크와 반도체사업 부진 등으로 재무 중심의 안정 기조에 집중해왔지만 앞으로는 기술과 투자 중심의 '이재용식 경영'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부회장은 2017년부터 컨트롤타워격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이끌며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이재용 회장을 보좌해왔다. 그룹의 구심점이 사라진 시기, 그는 재무 안정과 조직 관리에 집중하며 삼성의 안정을 이끈 '위기관리형 리더'로 평가된다.
다만 재무 전문가의 보수적 경영 판단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대응 실기 등으로 이어지며 '삼성 위기론'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평가도 함께 받았다. 정 부회장을 대신해 초대 사업지원실장을 맡은 박학규 사장은 과거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을 지냈으며,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과 완제품(DX)부문에서 경영지원실장을 거친 재무·전략통으로 통한다. 재계는 이번 컨트롤타워 수장 교체를 두고 삼성이 재무 중심의 안정 경영을 마무리하고, 이제 기술과 투자에 속도를 높이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 사장은 과거 미래전략실에서 경영진단팀장을 맡는 등 그룹 내 대표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며 "삼성에서 반도체뿐 아니라 모바일과 가전 등 주요 사업 부문을 두루 거친 인물은 드물다는 점에서 이 회장이 그를 신임하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러난 정 부회장이 재무와 경영 안정에 무게를 뒀다면 박 사장은 재무와 기술 두 영역을 아우르며 이 회장의 뉴삼성 구상을 지원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내년은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낸 뒤 처음 맞는 해로,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 걸림돌이 사라진 첫해다. 이에 뉴삼성의 원년을 본격적으로 그려나가기 위해서라도 이사회에 복귀해 책임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회장은 2016년 10월 사내이사로 선임됐지만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2019년 10월 연임 없이 물러났고, 2022년 회장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미등기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등기임원이 아닌 인물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이 회장이 책임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등기이사 복귀의 필요성에 대해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이 삼성전자의 대표이사로까지 복귀해야 진정한 의미의 책임경영이 완성된다는 시각도 있다. 단순히 이사회에 복귀하는 수준을 넘어 경영 전면에서 직접 의사결정을 주도해야 뉴삼성 체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난 만큼 이제는 상징적 존재가 아닌 실질적 최고경영자(CEO)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대표이사 회장 선임이 그런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평가는 결국 매출과 영업이익, 다시 말해 본업 경쟁력으로 귀결된다"며 "이 회장이 앞으로 내실 강화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1등 삼성'의 위상을 세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부연했다.
대형 인수합병(M&A) 추진 등 신사업 청사진도 관심사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과감한 투자 전략이 불가피하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미국 하만(9조원) 인수 이후 10년 가까이 이렇다할 '빅딜'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인공지능(AI)·로봇·헬스케어 등 미래 사업을 중심으로 연이어 인수·투자를 단행, M&A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사업부(5000억원)와 독일 공조기업 플랙트그룹(2조4000억원)을 인수했고, 7월에는 미국 헬스케어 플랫폼 젤스를 품었다. 지난달에는 AI 헬스케어 기업 그레일의 지분 4%(1560억원)를 확보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계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삼성의 내년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라며 "첫째는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해 책임경영 체제를 완성하느냐, 둘째는 하만 이후 멈춰섰던 초대형 빅딜을 성사시켜 달라진 삼성의 모습을 적극 내비치느냐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이 내년 등기이사 복귀와 함께 대형 투자 카드를 꺼낸다면 그 시점이 뉴삼성으로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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