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 당선인의 삶은 가난·비주류를 돌파해 권력의 정점에 오른 역정으로 요약된다. 소년공에서 출발해 인권변호사,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야당 대표를 거쳐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이 당선인은 1963년(호적상 1964년)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태어났다. 빠듯한 살림에 가족은 1976년 2월,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했다. 당시 성남은 서울 도심 철거민과 빈곤층이 밀려든 도시였다. 기반시설도, 일자리도 부족했지만 생계를 위해 가족 모두가 돈을 벌어야 했다.
이 당선인은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곧장 일터로 향했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목걸이 부품을 만드는 가내공장이었다.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밤 9시까지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다. 이후에도 고무부품 공장, 냉장고 공장 등을 전전하던 중 프레스 기계에 왼팔 손목이 끼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성장판이 손상돼 왼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됐지만 치료는커녕 산업재해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훗날 그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그때부터 살기 위해 공부하기를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 당선인은 공장 일과 병행하며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이어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쳤다. 독학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한 끝에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진학했다. 왼팔 장애로 병역은 면제 판정을 받았다. 등록금과 생활비는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1989년 성남에서 인권변호사로 개업했다. 생계를 위한 변호사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데 힘을 쏟았다. 성남 주민운동과 노동 사건, 환경 소송 등에 무료 변론으로 나섰고,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정치적 지향에 뿌리를 놨다.
법조인 이 당선인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로는 2003~2004년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성남에 있던 종합병원 두 곳이 폐업하자 그는 성남시민 20만명의 서명을 받아 시의회에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조례안이 상정되도록 힘썼다. 하지만 당시 시의회 다수를 차지한 한나라당이 이를 47초 만에 부결시켰다. 이에 그는 시민과 함께 거세게 항의하다 특수공무방해죄로 수배돼 시의회 건물 맞은편인 성남주민교회로 몸을 숨기기도 했다.
이후 2010년 성남시장에 오른 그는 10여년 동안 멈춰 있던 시립병원 설립을 다시 꺼내 들었다. 예산을 편성하고 행정절차를 정비한 끝에 2013년 성남시의료원 착공을 이끌어냈다. 2020년 개원한 성남시의료원은 전국 첫 주민 조례 발의로 설립된 공공병원으로, '시민이 만든 병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당선인은 이번 21대 대통령선거 전날인 이달 2일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4년 3월28일 오후 5시, 성남시청 앞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결심했다"며 "성남은 소년공 이재명이 고난도 겪었지만 꿈도 키워내고 시민운동가 이재명이 사회 변화를 일군 곳"이라고 말했다.

정계 활동의 출발점은 2005년 이 당선인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부터다.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통해 행정과 제도의 벽을 절감한 그는 지역 시민단체의 권유와 자신의 판단 끝에 정당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부대변인 등을 맡다가 2010~2014년 제19·20대 성남시장을 역임했다. 19대 성남시장 취임 직후 그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공식 선언했다. 당시 성남시는 7000억원 넘는 부채를 떠안고 있었다.
이 당선인은 3년6개월간 예산 삭감과 긴축 재정 등을 통해 모든 빚을 갚아 모라토리엄을 졸업했고, 이는 다른 지자체의 벤치마킹 사례가 됐다. '정치인 이재명'을 전국 단위로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실용 행정가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이른바 '3대 무상 복지'로 불리는 무상교복, 청년배당, 산후조리비 지원 정책이 본격 추진된 것도 이 시기였다.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그는 재임 기간 첨단 산업 육성과 지역 균형 발전, 공공 주도 화폐 유통 등 실용적 경제 정책을 집중 추진했다. 민간 배달 플랫폼의 독점 구조와 과도한 수수료에 맞서 공공배달앱 '배달특급'을 도입했고, 이는 지역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당선인은 경기도정 경험을 발판 삼아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처음 도전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에 패해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기존 주류와는 결이 다른 직설적 언어와 정책 중심 메시지로 정치권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본선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의 후계자이자 비주류 출신이라는 이중적 이미지 속에서 치른 선거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의 접전 끝에 0.73%포인트(24만7000표) 차로 석패했다. 역대 대선에서 가장 적은 표 차였다.
같은 해 6월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8월에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대표 시절 그는 당내 분열 수습과 총선 준비에 매진하는 한편, 각종 검찰 수사와 사법 리스크에 맞서 '정치 탄압'이라는 프레임을 고수했다.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고 수도권 민심을 회복하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 당선인의 정치 인생에서 결정적 전환점은 지난해 12월3일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다. 이는 대통령 탄핵 추진으로 이어졌고, 올해 4월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의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했다. 이어 10일 이 당선인은 21대 대선 출마를 선언, 27일 당내 경선에서 89.77%의 압도적 지지율로 최종 후보에 선출됐다. 같은 달 30일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을 연 그는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이 행복한 진짜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대선 과정에서 그는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지금은 이재명'이라는 슬로건 아래 경제·사법·정치·행정 등 10개 분야의 핵심 공약을 발표했다. 선고 공보물에서는 "지금은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할 때"라며 "이재명은 위기의 시대에 국민의 삶을 지키고,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킬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이달 4일 새벽 대통령 당선을 확정지으며 소년공 출신 이재명은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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