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대관식을 치른 지 오는 10월이면 4주년이 된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리더십 체제에서 판매대수 기준 '글로벌 톱3'에 오르며 역대급 실적을 바탕으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정 회장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한 품질 개선'을 강조하며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외형 성장 뿐만 아니라 정 회장 체제의 경영권 승계 퍼즐을 맞추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도 현대차그룹이 풀어야 할 숙제다. 딜사이트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현황과 추후 과제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분 승계 이슈가 부각되면서 비주력 계열사 활용법에 관심이 쏠린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식 가운데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비교적 주목도가 낮은 회사 주식을 팔아 현금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 총 10개사 주식 소수 보유…순환출자 해소 땐 지배력 약화 우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정 회장은 현재 상장사 7개사와 비상장사 2개사 총 9개 국내 계열사 지분을 보유 중이다.
세부적으로 상장사는 ▲현대차(2.67%) ▲기아(1.77%) ▲현대모비스(0.32%) ▲현대글로비스(20%) ▲현대위아(1.95%) ▲현대오토에버(7.33%) ▲이노션(2%)이다. 비상장사는 ▲현대엔지니어링(11.72%) ▲서림개발(100%)이다. 해외 계열사 지분도 있는데, 정 회장은 미국 로보틱스 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21% 넘게 확보한 상태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복잡하게 얽힌 순환출자 구조를 그리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아들인 정 회장이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소수(합산 13.12%)만 보유 중임에도 그룹사 전반에서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지금의 순환출자 구조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 국내 10대 대기업 가운데 순환출자 고리를 끊지 못한 곳이 현대차그룹 뿐인 데다 오너가의 낮은 지분율이 경영권 공격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차그룹이 지난 2018년 추진한 1차 지배구조 개편안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반발에 막혀 무산됐다. 엘리엇은 2019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총 7조원 규모의 고액 배당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해외 경쟁사 임원의 이사회 진입을 강요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정 회장이 온전하게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정 명예회장 보유 주식 상속 및 증여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안정화가 거론된다.
◆ 글로비스, 정 회장 주식가치만 1.7조원
핵심은 정 회장이 충분한 실탄을 확보했는지 여부다. 정 명예회장 보유분 주식 상속·증여에 따른 세금 납부 부담이 크고, 정 회장이 추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계열사 주식을 약 30% 가량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대주주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평가되는 지분율이 30% 이상이다.
업계는 정 회장이 현금을 조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비핵심 계열사 주식 매각을 언급한다. 현대차그룹 실적 버팀목인 현대차와 기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중심축인 현대모비스를 제외한 계열사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유력한 계열사는 물류 회사인 현대글로비스다. 2001년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 회사로 출범한 현대글로비스는 계열사 일감으로 빠르게 외형 성장을 일궜고, 2004년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했다.
현대글로비스가 애초 오너일가의 자금 창구 역할을 위해 설립된 만큼 주식 정리는 예고된 수순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 1차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매각해 자금 마련을 시도하고, 정 명예회장이 2015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보유 주식 전량을 처분하며 8253억원을 취득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정 회장은 지난달말 기준 현대글로비스 749만9991주(20%)를 보유 중이며, 지난달 26일 종가(22만8500원) 기준 1조7137억원 규모다.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서 하단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지분 매각에 대한 가능성을 높인다.
다만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정리하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을 제외한 그룹사 보유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이 10%를 밑도는 만큼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을 뿐더러 대량 물량이 시장에 유통될 경우 주가가 급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주요 주주 현황을 살펴보면 정 회장을 비롯해 ▲현대차 4.88% ▲현대차정몽구재단 4.46%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리예 AS 11%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스 10% 등이다.
◆ 낮은 중요도 '위아·오토에버·보스턴다이내믹스' 활용 가능성
현대글로비스 못지않게 유용한 계열사는 현대위아와 현대오토에버다. 현대위아의 경우 현대차(25.35%)와 기아(13.44%)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31.59%)와 현대모비스(20.13%), 기아(16.24%)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 회장이 보유분을 처분하더라도 지배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현재 정 회장이 보유한 2개사 주식가치는 총 751억원 상당이다.
해외 계열사로는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를 꼽을 수 있다. 정 회장은 2020년 약 2400억원의 사재를 털어 보스턴다이내믹스에 투자를 단행했다. 이 시기는 정 회장이 총수에 오르며 현대차그룹의 지향점을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직후였다. 시장에서 추정하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는 1조5000억~2조원 규모다. 이 회사 지분율 21.3%의 정 회장 주식가치는 최대 4000억원으로, 평가차익만 1600억원이다.
기업지배구조 한 전문가는 "정 회장의 개인 주식 활용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방안 중 하나로, 핵심은 현대글로비스"라며 "과거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합병안이 실패한 전례가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 역시 일반적인 형태의 지배구조 개편안으로는 시장 동의를 이끌어내기 못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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