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성과급 체계를 두고 격한 갈등을 빚는 삼성전자 노사가 정부 중재 아래 벌인 사후조정마저 결렬됐다.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까지 8일, 코스피 시가총액 4분의 1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파업 여부에 국민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사 자율 합의 가능성이 낮아진 만큼 이를 막을 법적·제도적 수단에 시선이 쏠린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11일 오전 10시부터 13일 새벽 3시까지 사흘에 걸쳐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사후조정을 진행했지만 합의 도달에 실패했다. 중노위 조정안은 경제적부가가치(EVA) 기준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와 연봉 50% 상한을 그대로 유지하되,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 한해 영업이익 12%를 특별경영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다만 국내 영업이익 1위 조건부인 데다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이에 노조는 "오히려 퇴보한 안건"이라며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조합의 요구는 성과급 상한 폐지, 투명화, 제도화인데 조정안에는 이 중 어느 것도 반영되지 않았다"며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도 SK하이닉스보다 높은 실적을 낸 경우에만 지급하는 일회성 안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성과를 외부 요인에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결렬을 선언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도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어렵게 만든 사후조정이 노조의 결렬 선언으로 안타깝게도 무산됐다"며 유감을 표했다. 회사는 "노조의 이런 결정은 회사는 물론 협상 타결을 기다리는 임직원과 주주, 국민들에게 큰 걱정과 불안을 끼치는 행동"이라며 "마지막까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 간 성과급 제도화를 둘러싼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이달 21일 총파업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이날 오후 수원지법에서 취재진에게 "사후조정까지 5개월 동안 교섭을 하면서 회사 안건은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며 "더 이상 조정에 대한 입장이 없는 상태"라고 재차 강조했다. 파업이 끝나기 전까지 회사와의 추가 대화는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노조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며, 최소 5만명 이상의 조합원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총파업까지 8일 남짓한 시점에서 이를 제어할 수단은 파업 행위 자체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두 가지다. 그러나 두 카드 모두 실제 파업을 막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6일 수원지법에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등 2개 노조를 상대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 2일 1차 심문에 이어 이날 2차 심문을 열었고, 이르면 20일 전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파업 예정일 하루 전에야 결론이 나오는 셈이다.
그러나 가처분이 인용되더라도 총파업 자체를 원천 봉쇄하기는 어렵다. 가처분 신청의 핵심은 안전보호시설 정상 유지와 웨이퍼 변질 방지 등에 관한 것으로, 관련 인력은 전체 조합원의 약 10% 수준이다. 나머지 조합원은 가처분 인용 여부와 무관하게 파업에 참여할 수 있다.
조성기 노무사(노무법인 승)는 "삼성전자는 필수공익사업장이 아니어서 안전보호시설 범위 외 쟁의행위는 적법하다"며 "가처분이 파업을 무력화할 정도로 넓게 인정되기는 쉽지 않고, 결국 어느 정도 생산 차질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법원 결정에 따라 합법적 파업의 범위가 좁아질 수 있고, 위반 시 손해배상이나 업무방해 등 책임이 커질 수 있어 파업 동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봤다.
삼성전자 파업의 또 다른 변수로 정부의 강제 개입 수단인 긴급조정권이 거론된다. 긴급조정권은 노조법 제76조에 근거해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다. 발동 즉시 30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되고 중노위 조정·중재 절차가 시작된다. 과거 발동 사례는 1969년 대한조선공사, 1993년 현대차, 2005년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등 네 차례뿐이다. 제조업 분야에서 발동된 건 1993년 현대차가 유일하고, 삼성전자에 발동된다면 21년 만이다.
조 노무사는 "삼성전자 규모상 긴급조정권 요건은 충족된다고 본다"며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발동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헌법상 보장된 파업권을 강제로 제한하는 만큼 극히 예외적으로 운용돼야 하고, 현 정권 정체성상 발동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긴급조정 가능성을 열어두는 메시지만 명확히 줘도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는 압박이 된다"고 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파업으로 손해 본다고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메모리 물량이 달려서 줄 서 있는 상황에서 공급 차질 우려를 내세우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정권이 있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밤을 새워서라도 대화를 해야 한다"며 사실상 선을 그었다. 긴급조정권 발동 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과 정면충돌할 여지가 크고, 노동계 반발이 거셀 것이란 점도 친노동 정책을 펼쳐온 현 정부로선 부담이다. 발동 여부는 노동부 장관 소관이지만 노정 관계 파장을 감안하면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총파업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산업계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파업이 강행되면 반도체 생산 차질은 물론 고객사 납기 지연,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 신뢰도 하락 등 중장기적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협력사 1700여곳의 연쇄 피해 우려도 제기된다. 코스피 시가총액의 20~25%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인 만큼 파업 여파가 증시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파업 장기화 시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최대 40조원 넘게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가 HBM 경쟁력을 겨우 회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이 터지면 미국 빅테크가 SK하이닉스로 물량을 돌릴 것"이라며 "대체 공급처가 없는 만큼 SK하이닉스 매출만 늘어나는 결과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파업 이후 후폭풍도 우려했다. 이 교수는 "이번 파업이 DS부문 중심으로 진행되는 만큼 특별 보상을 받지 못하는 DX부문 조합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노사 간 갈등이 끝나도 사업부 간 형평성 문제가 새로운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노사 모두를 향해 쓴소리를 냈다. 그는 "삼성전자가 그동안 받은 세액공제만 수십조원인데, 노든 사든 그 성과를 자기들끼리 나누려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이어 "언론에서 노조만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건 잘못된 프레임"이라면서도 "파업이 성공하려면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걸 노조가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고민하는 쪽이 결국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노사 간 협상 여지가 완전히 닫힌 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조 노무사는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노사 교섭 자체가 지금처럼 다소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라며 "성과급 기준을 단체협약으로 명문화하기 어렵다면 매년 합의하는 방식도 있고, 금액 수준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총파업 예정일인 21일까지 아직 시간이 있고,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와 무관하게 결국 노사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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