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EV) 침체 속에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테슬라의 파트너로 낙점된 것은 LG엔솔의 ESS 경쟁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회사는 미국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업체 가운데 가장 앞선 SI(System Integration, 시스템 통합) 사업자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연말까지 ESS 매출 비중을 크게 늘리며 전력 인프라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LG엔솔은 미국 빅테크 테슬라의 ESS 배터리 공급업체다. 지난 3월 미국 정부가 인도·태평양 에너지 안보 장관회의, 비즈니스 포럼(IPEM) 결과 보고서에서 테슬라와 LG엔솔의 협력 사업을 공식화하며 파트너십이 공개됐다. 테슬라와 LG엔솔은 2027년 생산을 시작하는 미시간주 랜싱에 43억달러(약 6조원)의 리튬인산철(LFP) 프리즘 배터리 셀 제조 시설을 건설하는 공급 계약을 맺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를 축으로 이어온 LG엔솔과 테슬라의 배터리 파트너십이 ESS 영역으로 확대된 데 주목하고 있다. ESS는 전력을 저장한 뒤 필요할 때 공급하는 에너지 저장 장치로 셀, 배터리 관리시스템(BMS), 모듈·팩, 컨테이너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개별 배터리 성능뿐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설계와 운영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LG엔솔은 "대규모 ESS는 수년 이상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설비인 만큼 개별 배터리 성능, 시스템 전반 설계와 운영 역량, 안정적인 공급 체계까지 함께 요구된다"며 "ESS 사업에서 어떤 배터리 제조사와 협력할지 결정하는 것은 높은 기술력과 제조, 운영, 시스템 등 다양한 역량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북미에 생산거점을 다수 확보하며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3월 얼티엄셀즈 공장 전환으로 북미 지역에서 총 5개의 ESS 생산 네트워크를 확보했다. 미시간 홀랜드 공장, 미시간 랜싱 공장, 캐나다 넥스트스타 에너지(NextStar Energy) 등 3개의 단독공장을 비롯해 얼티엄셀즈 테네시 공장, 오하이오 혼다 합작공장에서도 ESS 제품 생산을 시작하며 차별화된 생산 역량을 선보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미시간 홀랜드 공장은 지난해 6월 북미 최초로 대규모 ESS 배터리 양산을 시작한 핵심 거점이다. 안정적인 양산 체제를 구축했고 테라젠(Terra-Gen), 델타(Delta) 등 주요 고객사와 공급을 확정했다. 지난해 11월 ESS 양산에 돌입한 캐나다 넥스트스타 에너지 공장도 빠르게 수율을 안정화하며 가동 3개월 만에 100만셀 생산을 돌파했다.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에서 LG엔솔의 단독공장으로 전환됐다.
미시간 랜싱 공장에서는 상반기 ESS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다. 올해 ESS용 파우치를 시작으로 내년 각형 LFP 배터리 제품을 생산할 예정으로 테슬라와 6조원 규모의 대규모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주 역량을 드러냈다. 오하이오에 있는 혼다와의 합작법인 L-H 배터리 컴퍼니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 생산라인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생산 시작을 목표로 양사는 전환 규모와 시점 등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 중이다.
ESS 사업은 특히 전사 실적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북미 전기차 시장 둔화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강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ESS가 돌파구가 되고 있다. LG엔솔의 경우 ESS는 올해 1분기 기준 전사 매출의 20% 중반까지 비중이 확대되며 의미 있는 매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연말 기준 30%대로 확대하는 게 목표다.
ESS 사업에서는 지난 2월 기존 전략 고객과 북미 전력망 프로젝트 공급계약을 추가로 체결하며 신규 수주 모멘텀을 이어갔다. 해당 프로젝트는 2028년부터 공급 예정으로 생산 중인 ESS용 LFP 제품 대비 비용이 15% 감소한 차세대 제품이 적용된다. 올해 말까지 50GWh 이상의 ESS 생산 능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ESS 시장은 AI 데이터센터 확산, 산업 전동화, 재생에너지 확대 등의 요인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고성능 컴퓨팅 환경에서는 ESS가 단순 저장기능을 넘어 전력 부하 최적화와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한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글로벌 ESS 시장은 지난해 약 300GWh에서 2030년 750GWh 규모로 2.5배 가까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구광모 LG 회장도 현장에서 배터리 사업을 직접 챙기며 힘을 싣고 있다. 구 회장은 현지시간 지난 3월3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웨스트보로에 있는 LG엔솔의 ESS SI 전문 자회사 버테크(Vertech)를 찾았다. 구 회장은 "ESS 배터리 하드웨어 공급을 넘어 고객에게 부가가치가 높은 통합 솔루션 역량을 높여 시장을 선도하는 압도적 지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 등 미래 배터리 수요 확대가 예상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통합 솔루션 역량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LG엔솔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배터리 제조 경쟁력에 소프트웨어 기반 운영·관리 역량을 더해 AI 시대 에너지 인프라 시장을 위한 배터리 사업의 질적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원석 iM증권 연구원은 "LG엔솔은 국내 업체들 중 사실상 유일하게 미국 SI 시장에 진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수주를 확보하고 있으며 미국 ESS 시장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새로운 기회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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