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태은 기자] “5~6년 전만 해도 국내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 국산 제품 비중이 40~50%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5%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18일 딜사이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인공지능(AI)에 열광하는 사이 한국은 녹색산업이라는 거대한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중국에 내어주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정작 국내 산업 기반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AI와 생태경제학, 기후경제 등 에너지·산업·생활 전반을 친환경 및 지속가능한 구조로 전환하는 녹색전환(GX) 전략과 기후대응의 새로운 정책 영역을 연구해 온 전문가다. 그는 사단법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서울시 혁신센터장과 협치자문관 등을 지냈다.
그가 몸담고 있는 녹색전환연구소는 2013년 7월 설립된 민간 기후정책 싱크탱크로 기후경제, 녹색일자리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무서운 속도의 중국… 태양광·배터리 모두 밀렸다
김 소장이 짚은 녹색산업 부상의 핵심 배경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 규제'다. 지정학적 분쟁으로 화석연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재생에너지가 필수 자립 수단이 됐고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으로 인해 친환경 기술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가장 큰 위기 요인은 단연 '중국의 굴기'다. 김 소장은 한때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한국의 태양광과 배터리 산업이 이미 중국에 크게 밀리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김 소장은 “태양전지 기술이나 반도체 기술이 사실은 (생산원리가) 같다”며 “모래에서 원료를 추출해 잉곳을 만들고 이를 얇게 잘라 웨이퍼와 태양 전지를 만든 뒤 이 전지들을 모아 태양광 모듈을 만들어 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이미 잉곳과 웨이퍼는 중국 기업들에게 밀려 한국에선 거의 생산을 못 할 정도”라며 “그들의 역량을 무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웨이퍼나 셀을 수입해 모듈을 조립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배터리 시장의 판도 변화 역시 뼈아픈 대목이다. 김 소장은 “불과 5~6년 전만 해도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같은 한국 3사가 글로벌 점유율 최고였지만 지금은 현저히 떨어졌다”며 “한국은 그동안 고급 기술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로 시장을 리드했지만 중국이 에너지 밀도는 다소 낮아도 가격이 싼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에 성공하면서 시장이 LFP 배터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CATL의 경우 리튬조차 쓰지 않는 나트륨 배터리 개발에도 성공했다"며 “거듭되는 기술 혁신으로 가격을 낮추고 상업적인 대중화도 성공시키는 대목을 우리는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미 중국 경제의 중심축이 AI 못지않게 녹색산업에 기울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태양전지, 풍력 터빈, 배터리, 전기차, 전해조, 히트펌프 등 6대 핵심 분야가 전체 GDP의 약 11%를 차지하고 있고 경제 성장률의 3분의 1을 견인하고 있다”며 “우리는 매일 언론에서 AI 얘기하는 동안 중국은 녹색산업 비중을 키우고 현재는 이 라인업 전체를 다 쥐고 있다”고 말했다.
◆ 중국 대체할 유일한 ‘공급망 파트너’, 韓 제조업이 무기
비록 주도권은 뺏겼지만 김 소장은 한국의 '탄탄한 제조업 기반'에서 기회를 엿봤다. 김 소장은 “중국을 제외하고 6대 핵심 분야 라인업 전체 혹은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특허만 있지 제조 쪽은 주목할 만한 게 없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때 한화큐셀과 LG에너지솔루션이 넘어가 공장을 지어줬고 유럽 역시 풍력 터빈은 강하지만 태양광 회사들은 2010년대 넘어오면서 거의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제조업이 전체 부가가치의 약 27%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제조업 국가"라며 "주력 산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주변에 부품·소재·장비 기업들로 구성된 산업 생태계도 함께 구축돼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현대차·기아(전기차), 두산에너빌리티·CS윈드·SK오션플랜트(풍력), 삼성전자·LG전자(히트펌프) 등을 지목하며 “이렇게 제조 잠재력이 있거나 이미 제조를 하는 유력 회사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데 정부가 녹색산업이라는 거대한 미래 섹터로 규정하고 제대로 지원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는 정면승부보다 공급망 다변화 수요를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과거처럼 1등 아니면 다 죽는 '공급망 최적화' 논리가 아니라 이제는 자원의 무기화를 우려해 '공급망 다각화'로 가는 추세”라며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중국에 견줄 만한 제조 역량을 갖춘 한국은 북미나 유럽 시장에서 훌륭한 대안 공급망이 될 수 있는 만큼 우리가 굳이 중국을 완벽하게 이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 철 지난 WTO 체제는 그만… 능동적 산업정책 펴야
김 소장은 이를 위해 공격적인 내수 시장 창출과 능동적인 산업정책을 주문했다. 그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들도 결국 국내 시장에서 성장 기반을 마련한 뒤 세계로 나갔다"며 “흥미롭게도 과거 산업정책으로 중진국을 넘어선 경험이 있는 한국이 정작 녹색산업에선 제일 뒤늦게 정책을 펴는 나라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가 능동적으로 개입해 기술 지원도 해주고 국내 조달 시 국산에 큰 혜택도 줘야 한다”며 "유럽도 올해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을 통해 역내 생산 기반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철 지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지나치게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재생에너지 보급의 또 다른 난제로 꼽히는 재생에너지 입지 부족론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국은 공간이 부족해서 재생에너지를 못 하는 나라가 아니라 활용 가능한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나라"라며 "화석연료를 위해 광산 개발을 감수하는 것처럼 재생에너지를 위해서도 일정 면적의 토지를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 면적의 0.5%를 차지하는 골프장이나 서울시 초·중·고등학교 약 1300곳의 옥상 등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며 "그런데도 야산 등 값싼 토지에만 태양광을 설치하려다 보니 입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국토의 2~4%를 에너지 생산에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해외 화석연료 수입에 의존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 소장은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 재조정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는 “한국은 지금 완전한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제조업 역량을 녹색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AX(인공지능 전환)과 같은 정도 수준으로 GX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3대 메가 프로젝트 발표 이후에 GX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것 같다"며 “AI 경쟁만큼이나 녹색 산업 정책의 우선순위와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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