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마케도니아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의 분신이었다. 거침없는 정복전의 동력은 탁월한 리더십과 강력한 카리스마였다. 대왕의 발길이 닿는 궤적을 따라 제국의 영토가 팽창했고, 대왕의 기세가 오를수록 제국도 번영했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을 기점으로 마케도니아 제국은 붕괴했다. 한 명의 뛰어난 개인이 거대한 나라를 지탱한 셈이다.
미래에셋그룹의 성장도 박현주 회장의 결단이 이끌었다. 본인의 철학을 나침반으로 삼아 방향성을 설정했다. 위기가 기회라는 판단하에 공격적인 투자로 외형을 키웠다. 벤처캐피털 시절 외환위기 속에서 우량주를 대거 매입하고 가격이 급락한 채권에 투자해 성과를 거뒀다. '저축에서 투자로'라는 슬로건 역시 박 회장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부동산 담보와 대출에 기댄 전통 금융기관이 도미노처럼 무너진 상황에서 구조적 한계를 목도하고 발상을 전환했다. 이자 대신 투자 수익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판단이 뼈대로 자리 잡았다.
박 회장의 개인기가 미래에셋그룹의 성장을 견인하는 공식은 여전하다. 최근 자본시장을 달군 스페이스X 투자가 대표적이다. 투자은행(IB) 업계가 추산하는 미래에셋그룹의 스페이스X 총 투자 규모는 2억7800만달러(약 4000억원)에 달한다. 미래에셋증권이 약 2000억원을 출자하며 핵심 자금줄 역할을 맡았고, 미래에셋캐피탈과 미래에셋벤처투자 등도 자금을 보탰다. 오너의 주도 없이는 불가능한 베팅이라는 평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큰 우주 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건 일반적인 금융기관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며 "박현주 회장의 미래에셋그룹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미래 먹거리인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앞서나가는 모습이다. 국내 최초로 1000억원 규모 디지털 채권 발행에 성공했고,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인수에도 나섰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개편에도 적극적이다. 컨트롤타워는 박 회장이다. 내부 조직 개편이 이를 방증한다. 당초 소규모 팀 단위였던 토큰증권(STO) 관련 조직이 단숨에 본부급으로 격상했다. 박 회장이 직접 파격적인 지원을 지시한 결과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박현주 회장은 토큰증권과 가상자산 등 디지털 자산으로의 사업 확장에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압도적 개인기의 원천은 강력한 오너십이다. 박 회장이 소유권과 경영권을 동시에 틀어쥐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에서 흔하지 않은 형태다. 정부의 금융 규제 역사는 철저하게 오너십 배제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특히 금융지주회사법을 앞세워 소유 분산과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착시켰다. 박 회장 역시 과거 거센 지주사 전환 요구를 받았으나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당시의 선택이 미래에셋그룹의 기동력을 지켜냈다. IB업계 관계자는 "타 금융기관 수장들 사이에서 부러움이 섞인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며 "오너의 결단이 곧바로 실행으로 이어지는 미래에셋그룹의 구조적 강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시장의 시선은 '포스트 박현주'를 향한다. 현재 미래에셋그룹의 지휘권은 박 회장에게 과도하게 쏠려있다. 독보적인 카리스마가 사라진 이후의 미래에셋그룹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박 회장도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지만 걸음이 꼬였다. 첫 단추는 당초 소유와 경영의 분리였다. 박 회장은 한국 재벌 특유의 세습 경영을 비판하며, 경영권은 전문가에게 넘기고 자녀는 이사회에만 참가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국가 인재 육성을 위해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25%를 미래에셋희망재단에 기부할 당시의 발언은 시장에 각인됐다. 박 회장은 "많은 인재가 치열한 경쟁을 통해 미래에셋의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길을 활짝 열어놓겠다"며 "세 자녀와는 경영에 개입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공언했다.
최근 기류는 미묘하게 엇갈린다. 오너가 2세가 최전선에 등장했다. 박 회장의 장남 박준범씨는 미래에셋증권 PI(자기자본투자) 부문 수석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미래에셋벤처투자에서 선임심사역으로 근무하며 기본기를 익힌 후 본격적인 기업 발굴과 투자 실무를 담당하게 됐다. 대규모 자본을 굴리며 실전 감각을 키우는 데 적합한 자리다. 박 회장이 자신의 무기인 투자 선구안을 이식하기 위한 본격적인 경영 수업이라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마케도니아 제국은 철저히 분열했다. 미래에셋그룹이 마주한 과제도 이와 맞닿아 있다. 박 회장의 탁월한 직관과 결단력은 현재의 미래에셋그룹을 일군 최강의 무기였지만, 포스트 박현주 시대에는 최대 리스크라는 평가다. 승계의 무게추가 2세로 기울어질수록 시장의 의구심은 더 커진다. 박 회장 특유의 야성과 감각이 혈통만으로 온전히 상속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속가능성의 열쇠는 오너가 아닌 시스템에 있다. 미래에셋그룹의 시험대는 박현주라는 이름 석 자를 지우고도 성장하는 단단한 조직의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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