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전기차 충전기업 채비의 코스닥행 상장 시계가 예비심사 청구 7개월 만에 다시 돌기 시작했다. 전기차 캐즘과 보수적인 심사 기조 속에서 장기간 버틴 끝에 상장위원회 테이블에 오른다. 정부의 산업 육성 기조가 순풍으로 작용하며 승인 기대감이 높아진 가운데 시장 시선은 채비의 기업가치에 쏠린다. 기존 조 단위로 거론되던 밸류에이션 눈높이를 낮추고 현실적인 수준의 몸값을 제시할 지가 관건이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오는 27일 코스닥 상장위원회를 열고 채비의 상장 예비심사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해 7월 21일 예심 청구 이후 149영업일만이다. 규정상 예심 결과 통보 기한인 45영업일을 세 배 이상 초과한 이례적 장기 검토다. IB 관계자는 "첨단 기술력을 갖췄지만 재무적으로 적자인 기업은 결과 통보까지의 시간이 길다"면서도 "채비는 손에 꼽을 정도로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전방 산업인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가 발목을 잡았다. 채비는 충전기 제조부터 설치와 운영을 아우르는 전기차 충전 솔루션 기업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정책적 뒷받침이 성장의 전제 조건이다. 약 2년 전부터 가시화된 전기차 캐즘 현상은 기업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운 배경이 됐다. 도전적 환경 속에서 확대된 적자 폭은 재무적 불확실성을 가중시킨 대목이다.
업황 부진은 이익 미실현 특례 요건과 맞물려 압력을 더했다. 이른바 테슬라 트랙은 성장 잠재력이 우수한 기업에 문턱을 낮춰주겠다는 취지이지만 최근 부실기업의 상장 통로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거래소는 매출 가시성과 재무 추정의 신뢰도를 엄격하게 따지는 보수적 심사 기조로 돌아섰다. 상장 허들은 높아진 반면 성장성에는 의문부호가 붙는 이중고를 겪게 된 셈이다.
거래소의 인사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통상 2년 주기로 인력이 이동하며 심사역도 교체된다. 채비를 담당한 심사역도 올해 인사에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익 미실현 특례 요건은 정성적 평가 비중이 크다. 외부 전문기관의 기술성 평가 없이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미래 성장성을 평가해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신임 심사역이 기업 가치와 산업 전망을 파악하고 검증하는 데 시간이 추가 투입된 모습이다. 실제 상장위원회는 이달 초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중한 검토를 위해 일정을 한 차례 순연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정이 지연되며 시장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되기도 했다. 거래소가 결격 사유는 없으나 승인이 부담스러운 사례에 대해 자진 철회를 유도하는 관행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기업으로서는 미승인 결과보다는 자발적 재도전을 택하는 게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한 일종의 시그널로 해석하는 시각도 제기됐다. IB 관계자는 "심사가 길어질수록 시장에는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 때문에 발행사에는 부담"이라며 "실제 예심 청구 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진해서 철회하고 요건을 보강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상장위원회를 앞두고 승인 가능성이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특례 상장 요건을 충족한 상태에서 미승인 처분을 내릴 명분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최근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전기차 산업 육성 및 충전 인프라 확충에 우호적 입장을 견지하며 정책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걷어낸 점도 긍정적이다.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승인 여부 윤곽은 27일 오후 늦게 나타날 전망이다.
시장 관심은 몸값에 쏠린다. 기업공개(IPO)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2024년 당시 거론된 기업가치는 1조~2조원대였다. 직전 투자 유치 과정에서 인정받은 4600억원 기업가치를 바탕으로 높은 성장성을 반영한 수치다. 그러나 전기차 시장이 냉각하고 관련 업종에 대한 투자 심리가 냉각되면서 적정 가치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IB 관계자는 "조 단위는 포기하고 조금 더 현실적인 가격을 제시했다"며 "그러나 목표치인 7000억원도 높다는 시각이 있어 완주에 무게를 둔다면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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