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하나금융지주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차기 성장 동력으로 공식화하며 디지털 자산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직후 진행된 2025년 연간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스테이블코인을 그룹 차원의 핵심 신사업으로 직접 언급하면서 하나금융의 디지털 자산 전략이 선언적 단계에서 실행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함 회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스테이블코인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단순히 코인을 발행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없고,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시장을 주도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을 단기 유행성 사업이 아닌 금융 인프라 차원의 구조적 변화이자 중장기 성장 축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 발언의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함 회장은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 나온 다음 날 열린 컨퍼런스콜에 직접 참석해 약 10분간 모두발언을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신성장 동력으로 언급했다. 대외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된 직후 중장기 전략을 전면에 다시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메시지 관리 차원을 넘어선 행보로 받아들여진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서는 그간 사법 리스크로 인해 대규모 신사업과 중장기 전략에 대한 공개적 메시지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제약이 해소되면서, 그룹 차원의 신사업 추진 여건이 개선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제도화 초기 사업은 최고경영자(CEO)의 명확한 의지와 드라이브 없이는 추진이 어렵다는 점에서 회장이 직접 전략적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 자체가 상징성을 갖는다는 평가다.
실제 하나금융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위한 실질적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 하나금융은 BNK금융지주, iM금융지주, SC제일은행, OK저축은행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 출자를 통한 특수목적회사(SPC) 설립을 검토 중이다. 향후 제도화 이후 즉시 발행과 유통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구조를 염두에 둔 사전 준비 성격으로, 금융지주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구성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하나금융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은 단일 상품 출시보다는 '생태계 구축'에 무게가 실려 있다. 통신, 보험, 무역 등 다양한 산업군과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결제·정산, 무역금융, 플랫폼 기반 서비스 등 실제 활용처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설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 회장 역시 "향후 플랫폼 및 인프라 기업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해 확장성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법제화 완료 직후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구조를 사전에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제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하위 규정과 감독 기준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유통 채널 역시 당분간은 업비트, 빗썸 등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 은행 주도의 독자적 생태계 구축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자금세탁방지(AML)·고객확인(KYC) 부담, 사고 발생 시 평판 리스크 등 은행권 특유의 관리 부담도 상존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방 금융지주와의 컨소시엄을 선제적으로 구성한 데다, 회장이 직접 신사업으로 명시하면서 내부 의사결정과 실행 속도가 빨라질 수 있는 구조를 갖췄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함 회장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만큼 하나금융이 은행권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플레이어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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