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산업1부장] "한화라는 좋은 회사"
올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에게 이보다 더 달콤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미 해군의 프리깃함(호위함) 건조 계획을 발표하며 이를 도와줄 한국 기업으로 '한화'를 콕 집어 언급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주가가 움직이는 시대다. 한화로서는 산타클로스가 따로 없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조선소에서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한화는 조선소 인수 1년 만에 미국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간 끊이지 않던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로 상당 부분 씻겨 내려갔다. 정치의 언어가 산업의 물음을 대신한 순간이다. 마치 백악관과 한화가 입을 맞춘 듯, 퍼즐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한화가 이 시점에 이런 메시지를 던진 배경은 분명하다. 한화는 사업 확장과 3세 승계를 동시에 밀어붙이고 있다. 오너 3세 김동관 부회장의 차기 대관식을 앞두고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한화에너지의 지분 교통정리가 한창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주사인 ㈜한화 지분 22.65%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11.32%를 이미 증여했다. 경영권 승계의 큰 틀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여기에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한화에너지 구주 20%를 1조1000억원에 매각하며 '장남 중심' 승계 구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방향은 명확하고 속도도 빠르다.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올해 한화는 승계의 핵심 고리로 꼽히는 한화에너지 기업공개(IPO)를 두고 적잖은 홍역을 치렀다. 한화에너지는 3세가 지분을 나눈 가족 회사인 데다, ㈜한화를 통해 지배하는 계열사들이 이미 상장돼 있어 '중복 상장' 논란이 불거졌다. 올 초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3조6000억원 유상증자를 두고 "증여세 절감을 위한 꼼수"라고 직격했을 때, 그룹 전체가 긴장했다. 한화의 승계 작업은 정치·사회적 시선 위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핵추진 잠수함 건조 본격화 소식은 김동관 부회장에게 단순한 호재를 넘어선 유용한 카드다. 회장 승진의 명분을 쌓는 동시에 방산과 조선을 묶는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방산과 조선을 묶는 거대한 국가 전략 사업, 수조원 단위의 투자, '안보'라는 명분은 승계 논란을 덮기에 강력하다.
수조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핵추진 잠수함 사업 특성상, 대규모 자금 조달은 필수다. 자연스럽게 한화에너지 IPO에도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신사업 강화라는 명분 아래 승계 구도는 정리되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이재명 정부에는 '핵잠수함'이라는 전략적 선물을 건네는 윈-윈 구도가 그려진다. 기업과 정치의 이해가 맞물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현실에는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마다 아이들은 선물을 기도하지만, 트리 아래 놓이는 상자의 크기는 결국 부모의 지갑 사정이 결정한다.
한화필리조선소 역시 과거에는 위대한 조선소였지만, 오랜 폐쇄의 시간 속에서 시설은 낡고 부식됐다. 한화가 1년 동안 보완 작업을 진행했다. 그래도 핵추진 잠수함을 곧바로 건조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확보된 도크는 2개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물을 뺀 드라이 도크는 1개뿐이다.
추가 도크 인수를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필라델피아주 측이 높은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50억달러(약 7조원)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 자금을 실제로 조달할 수 있을지, 설령 투자하더라도 핵잠수함을 완성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건조 추진 과정에서 미국 대통령이 바뀔 경우, 프로젝트가 '올스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권이 바뀌면 전략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이 미국 정치의 현실이다.
결국 믿을 것은 김동관 부회장의 뚝심이다. 정치적 이슈를 기회로 만들 수는 있어도, 그것을 실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신뢰는 빠르게 무너진다. 김 부회장이 한화를 이끌고 '방산 초격차'를 완성해 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내려준 크리스마스 선물만으로는 부족하다. 봄이 오면 포장은 벗겨진다. 산타클로스는 떠나고 계산서만 남는다. 그의 뚝심으로 언젠가 한국 땅에서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이 건조되는 날, 김동관 부회장은 비로소 대한민국의 산타클로스로 불릴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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