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태민 기자] 크래프톤이 지난해 인공지능(AI) 기업 전환을 선언하면서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하고 있다. 현금 유동성이 전년 대비 줄어든 상황에서 투자 방향이 늘어남에 따라 AI 연계 사업의 수익화 시점이 투자 전략의 성패와 중장기 기업가치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최근 5년 동안 연구개발(R&D) 비용으로 ▲2021년 3652억원 ▲2022년 4040억원 ▲2023년 3792억원 ▲2024년 4248억원 ▲2025년 6123억원을 집행했다. 2021~2024년에 3500억~4000억원대를 유지하던 R&D 비용은 지난해 44.1% 급증했다. 매출 차지 비중도 18.4%로 2024년(15.7%)보다 2.7%p 늘었다.
통상 게임사의 연구개발비 증가 요인은 차기작 개발을 위한 기술 투자다. 최근 인공지능(AI) 기반 콘텐츠 생성, 딥러닝 기반 모션 및 애니메이션 등 기술 도입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AI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관련 사업과 인프라를 경쟁적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크래프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게임 내 AI 적용은 물론 자체 모델 개발, 피지컬 AI와 로보틱스까지 투자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제 크래프톤은 지난해 AI 연구 및 관련 조직을 확대했다. 지난해 11월 한국·미국에 로보틱스 연구 전문 자회사 '루도 로보틱스(CRAFT.AI, INC.)'를 설립했다. 김창한 대표가 미국법인장을, 이강욱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가 한국법인 대표를 겸임한다. 해당 조직은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두뇌 역할을 수행하는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연구를 전담한다.
이에 앞서 지난해 상반기엔 딥러닝본부 내에 피지컬 AI 전담 조직을 신설한 후, 딥러닝본부를 AI 본부로 재편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관련 연구 인력 또한 2024년 80명대에서 2025명 150명대로 약 2배가량 증가했다. 초기에는 정성적 결과물에 대한 저항이 컸지만, 내부 피드백 구조를 재정비하면서 기술 활용 범위가 넓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자체 AI 모델 개발도 병행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개인용 AI '키라'에 이어 이달 2일 AI 브랜드 '라온'을 출범했다. 라온은 ▲음성언어모델 '라온 스피치' ▲실시간 음성 대화 모델 '라온 스피치챗' ▲텍스트 음성 변환 모델 '라온-오픈TTS' ▲라온 비전 인코더 등 4종으로 구성됐다.
눈에 띄는 건 처음부터 직접 모델을 개발하는 방식인 프롬 스크래치(From Scratch) 방식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장기적으로 인프라 비용을 줄이고 기술 자립을 높이는 전략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기존 모델·코드를 그대로 가져와 미세조정하는 방식보다 초기 구축 비용과 리소스 부담이 높다. 결국 크래프톤으로서는 단기 효율보다 장기 경쟁력 확보에 무게를 둔 셈이다.
크래프톤은 이렇게 개발한 AI 기술을 게임 콘텐츠에 접목해 왔다. '인조이' 등에 적용된 '스마트 조이'를 통해 AI 기반 상호작용을 구현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배틀그라운드' 아케이드 모드에 CPC를 도입할 예정이다. 산하 스튜디오 렐루게임즈 신작 '미메시스'에도 강화 학습 기반 AI를 도입해 기술을 고도화했다.
최근에는 투자 외연을 게임 밖으로 넓히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크래프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피지컬 AI 기술 공동 개발 및 합작법인(JV)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 축적한 AI·시뮬레이션 기술을 방위산업과 제조 분야에 접목해 새로운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한화자산운용이 조성하는 AI·로보틱스·방위산업 투자 펀드에도 참여한다.
실제 크래프톤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현재 기술 투자를 추진 중인 AI 사업은 ▲게임 내 AI ▲자체 LLM ▲비전·멀티모달 ▲음성(TTS 상품화) ▲사내 업무 자동화 ▲피지컬AI ▲로보틱스 등으로 요약된다. 게임 경쟁력 강화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 상품화와 신사업 확장까지 동시에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초기 투자 단계인 만큼 현재까지 이들 중 독립적인 매출로 연결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크래프톤의 경우 사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단계인 만큼 선행 투자 부담이 큰 상황으로 분석된다. 현금유동성이 2024년 3조8777억원에서 2025년 3조3005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5% 감소한 상황에서 투자 방향이 늘어나고 있어 단기적으로는 투자 대비 수익화 지연에 따른 현금흐름 압박 우려가 없지 않다.
이러한 행보에 업계 해석은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미래 먹거리 확보에 선제적으로 나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본업인 게임 사업이 여전히 '원 IP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신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확대되며 자원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
결국 핵심은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다. 장기적으로는 AI 사업의 성과가 가시화되는 시점과 본업인 게임 사업과의 시너지 여부가 사업 성패를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모멘텀 시점을 가늠할 만한 포인트는 '라온' 브랜드의 상품화와 한화에어로와의 JV 매출 형성 시기, 인게임 AI 기술의 신작 흥행 연계 시기가 될 것"이라며 "투자 집행 속도와 관리 역량은 물론 크래프톤의 중장기 기업가치와도 직결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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