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임초롱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민영화 기대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 재무위기 극복 과정에서 국책은행 중심 지배구조가 굳어진 이후, 방산 호황과 기업가치 급등이 맞물리며 '매각 적기' 논리가 힘을 얻는 흐름이다.
특히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돼온 낙하산 인사 논란과 장기 경영공백은 KAI 경쟁력 저하 요인으로 지목되며, 정치가 아닌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산은 체제 10여년…번번이 좌초된 민영화
KAI는 1999년 삼성·대우·현대 등 3대 그룹의 항공사업을 통합해 출범했다. 외환위기 이후 항공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과당경쟁 해소와 산업 생존을 위한 '정부 주도 빅딜'의 산물이었다.
설립 초기에는 삼성항공(옛 삼성테크윈, 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대우중공업(옛 대우종합기계, 현 HD현대인프라코어), 현대우주항공이 각각 33.3%씩 현물 출자했다. 초대 사장으로는 당시 상공부 차관을 지냈던 임인택 전 교통부 장관이 취임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KAI의 대주주가 국책은행으로 바뀐 시점은 2006년이다. IMF 여파로 KAI가 자본잠식 등 재무위기를 겪자 대주주들은 무상감자와 유상증자를 수차례 단행했다. 출범 당시부터 계열사 부실을 떠안은 구조적 한계가 재무위기로 이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빚 상환이 어려운 상태가 지속되면서 채권단의 출자전환이 확대됐고, 결국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산은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 체제는 신규자금 공급과 강도 높은 자구안을 통해 기업가치를 회복한 뒤 시장에 재매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KAI 역시 구조조정 이후 2011년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며 정상화에 들어섰다.
이를 바탕으로 산은은 이듬해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대한항공 단독 입찰로 유효 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됐다. 이후에도 주주협의회는 2015년까지 공동 매각을 추진했으나, 가격 이견과 방산기업 매각에 대한 부담이 맞물리며 번번이 무산됐다. 산은은 이후 2018년까지 비금융 자회사 우선 매각 방침 아래 민영화를 시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수은 체제 9년…"팔고 싶어도 못 팔던 KAI"
2016년 이후에는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지배구조가 한 차례 더 바뀌었다.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비율이 악화된 수출입은행이 산업은행으로부터 KAI 지분을 2016~2017년 1조5565억원 규모로 현물출자 받으며 현재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사실상 민영화 지연의 '대안적 선택'이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순탄치 않았다. KAI는 대출사기, 분식회계 의혹 등으로 금융감독원 감리와 검찰 조사를 받았고, 산은이 관리해왔던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분식회계 사태와 맞물려 수은 내부에선 '부실을 떠안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수은 체제 이후에는 민영화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다. 기업가치가 급락한 상황에서 매각을 추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KAI 주가는 2016~2017년 5만~8만원대에서 2020년 1만6000원대까지 하락했다.
다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반전됐다. 글로벌 방산 수요 확대 속에 KAI 주가는 20만원을 넘기기도 했고, 지난해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11.8% 증가한 2692억원을 기록했다. 기업가치 회복이 본격화되면서 민영화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흐름이다.
올해는 KAI가 국책은행 최대주주 체제 아래 놓인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같은 지배구조로 인해 사장 인선 과정에서 정권의 영향력이 반복돼 왔다. 최근에도 신임 사장 선임까지 약 8개월의 경영 공백이 발생했다. 노동조합은 이를 두고 "리더십 공백과 전문성 부족이 수주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더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었는데 리더십 공백 때문에 수주전에서 번번이 낙방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KAI 민영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가 안보 산업일수록 정치 논리가 아닌 전문성과 시장 경쟁력 중심의 경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시장에서는 LIG그룹과 한화그룹이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LIG넥스원은 인수 검토를 위한 TF를 꾸렸고,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KAI 지분을 매입해 4대 주주(4.99%)에 올랐다.
단순 투자로 보기엔 전략적 의도가 짙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특히 방산 밸류체인 확대를 노리는 대기업 입장에선 KAI 인수는 단숨에 항공·우주 분야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다만 수은은 공식적으로 선을 긋고 있다. 수은 관계자는 "KAI 민영화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유력 인수 후보와 접촉하고 있다는 설도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장의 시각은 다르다. 수은은 KAI 지분을 원가 기준으로 평가해 BIS비율을 산정하는 만큼, 기업가치 변동성이 클수록 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결국 방산 호황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진 지금이 '공적자금 회수'와 '지배구조 정상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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