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령 기자] 한글과컴퓨터가 창사 36년 만에 사명을 '한컴(HANCOM)'으로 바꾸고 글로벌 소버린 에이전트 운영체제(OS)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문서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공식 폐기하고 인공지능(AI) 에이전트 운영체계 시장을 정조준하겠다는 승부수다.
김연수 한컴 대표는 19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전략 발표회에서 "사람이 묻고 AI가 답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는 AI가 스스로 일을 끝내는 시대, 그다음은 다수의 에이전트를 조율하는 에이전트 OS의 시대"라고 밝혔다. 그는 에이전트화와 주권화라는 두 가지 시장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 소버린 에이전트 OS 시장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한컴이 추산한 2030년 소버린 에이전틱 유효 시장 규모는 70억~100억 달러, 한화 약 10조~14조원이다.
김 대표는 실적을 근거로 AI 기업 전환을 증명했다. 지난해 한컴 별도 매출은 1753억원으로 전년 1591억원 대비 162억원 늘었으며 이 증가분의 54.6%가 AI에서 나왔다. 올해 1분기 매출은 465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이 중 AI 매출 비중은 11.21%에 달한다. 1년 전인 2025년 1분기 AI 매출 비중이 0.04%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성장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전체 AI 매출액은 올해 상반기 중 이미 초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별도 영업이익률은 25년 기준 29%로 30% 안팎을 유지했다.
시장 침투 속도도 주목된다. 2026년 1분기 기준 전체 B2B 고객 중 AI 패키지를 도입한 비중은 4.2%로, 글로벌 빅테크의 AI 제품 전환율 약 5%에 근접한다. 출시 1년이 채 안 된 시점의 수치다. SaaS 방식으로 솔루션을 사용하는 기업 중 54%가 AI 패키지를 선택해 계약을 갱신했다. 김 대표는 "고객은 자신의 가장 민감한 비정형 데이터를 한컴에 위임한 것"이라며 "향후 에이전트 서비스가 즉시 안착할 수 있는 확정 수요처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컴은 소버린 에이전트 OS 시장 진입 근거로 네 가지 해자(moat)를 제시했다. 첫째는 기술 완성도다. 대표 사례는 오픈소스 문서 파싱 엔진 오픈데이터로더(ODL)다. 2026년 3월 출시한 ODL 버전 2.0은 종합 점수 90%, 일반 문서 94%, 표 추출 93%, 헤딩 인식 83%로 벤치마크 4개 부문 모두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버전 2 출시 두 달 만에 깃허브 트렌딩 1위에 올랐다. 한컴은 오픈코어 전략으로 ODL을 무료 개방해 글로벌 표준 자리를 확보하고 그 위에서 생성형 AI 애드온과 B2B·B2G 솔루션으로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PDF 접근성 시장만 해도 글로벌 규모 8억2600만 달러(약 1조1600억원)로 ODL 접근성 기능 하나의 유료화 타겟 시장을 보수적으로 175억원, 표준 시나리오 기준 350억원으로 추산했다.
둘째는 AX 임상 데이터다. 한컴은 자체 사업장을 임상장으로 삼아 750건 이상의 업무 효율화 사례를 추적하고 있다. 외부 레퍼런스로는 국회도서관 AX 사업을 단독 수행했으며 180만 페이지를 ODL로 데이터화하고 한컴 PDF로 RAG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회사무처 AX 사업에는 삼성SDS 주관 컨소시엄에 참여해 HWP 데이터 파이프라인과 한컴 어시스턴트를 납품했다. 셋째는 20만 고객 기반이다. 중앙부처와 시도 교육청 100%가 한컴 고객이며 금융·보안에 민감한 기업 약 1500개사도 포함된다.
한컴의 아키텍처 전략도 주목된다. 김 대표는 "한컴은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집착하지 않는다"며 "데이터 원천, 실행 도구, 보안 및 거버넌스 환경을 통합하고 그 위에서 작동하는 LLM은 고객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비종속 멀티 LLM 아키텍처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미국 팔란티어(Palantir)의 구조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설명했다. 팔란티어는 자체 LLM 없이 데이터 통합 플랫폼과 에이전트 플랫폼의 결합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이다. 김 대표는 "한컴이 정의하는 소버린이란 단순히 외부와의 단절이 아니라 고객이 직접 최적의 AI 모델과 시스템을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완벽한 주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넷째는 글로벌 AX 협업 인프라다. 한컴은 최근 유럽 파트너 3곳과 MOU를 체결했거나 앞두고 있다. 글로벌 기술 산하 AI 데이터 전문 SI 기업과 MOU 체결을 앞두고 있으며 폴란드·프랑스 정부와 연계된 하이테크 R&D 기업과는 이미 완료했다. 중유럽 9개국에 거점을 둔 IT 컨설팅 파트너와도 협의 중이다. 비밀유지협약(NDA)로 파트너사명은 공개하지 않았으며 김 대표는 6월 내 계약 건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글과컴퓨터는 이날 사명을 '한컴(HANCOM)'으로 변경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김 대표는 "한글과컴퓨터는 1989년 한 시대의 출발점이었고 그 위에서 한국 디지털 사회가 자랐다"며 "이제 우리가 다루는 영역은 문서를 넘어 AI 에이전트로 한국을 넘어 글로벌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제품 정책도 전면 변경했다. 2~3년 주기로 연식을 붙여 출시하던 오피스 버전 정책을 종료하고 올해를 마지막 버전 출시로 삼아 이후부터는 AI 기능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상시 진화형 플랫폼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오피스 라이선스의 70~80%가 이미 연간 구독으로 전환 완료된 상태로 매출 타격은 미미할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봤다. 영구 사용권 고객에 대해서는 구독형 전환 보상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AI 기능이 업그레이드되는 순간 즉시 자동으로 고객 시스템에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전트 OS는 오는 6월 베타 버전을 먼저 선보인 뒤 하반기 고객사 검증을 거쳐 2027년 상반기 정식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사 인력의 30%가 에이전트 OS 개발·기획에 직접 투입돼 있으며 나머지 인력도 사실상 에이전트 OS 생태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한편 한컴그룹의 한컴위드는 디지털 금융, 양자보안, AI 인증을 3대 핵심 축으로 내세우며 차세대 보안 사업 확대에 나선다. 한컴위드는 실물자산 토큰화(RWA) 플랫폼 온토리움(Ontorium)과 디파이 플랫폼 아쿠아(Aqua)의 글로벌 론칭을 알렸다. 온토리움은 실물 금과 1대1로 연동되는 골드 토큰 OXAU를 발행하며 LBMA 인증 실물 보유, 파산 격리 구조로 설계됐다. 결제·자산 운용 플랫폼 플로트(Float)는 3분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송상엽 한컴위드 대표는 "전통적인 금융 강자들이 디지털 금융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발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자보안 부문에서는 KCMVP 암호 모듈에 양자내성암호(PQC) 알고리즘을 추가해 2023년부터 공급해왔으며 드론·인공위성 등 저사양 임베디드 기기용 경량 암호모듈 개발도 마무리 단계다. AI 인증 부문에서는 얼굴 라이브니스 인증 솔루션 한컴 오스(Auth), 딥보이스 실시간 탐지 기반 음성 인증 솔루션 스피키(SPEEKEY), 키보드 입력·화면 터치·주변 환경 정보를 분석해 별도 인증 절차 없이 세션 전 구간 신뢰도를 유지하는 무자각 지속 인증 솔루션 한컴 엑스씨오스(xCAuth) 3종을 공개했다. 송 대표는 "AI 위협은 AI 기술로 강화해야 한다"며 "보안성을 높이면 사용자가 불편해지는 트레이드오프를 해소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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