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한국 항공방산 수출이 호황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최근 완성기체 기업 한 곳에 역할이 집중되는 구조를 둘러싼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기체 개발·생산을 맡아온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수출 과정 전반에서 조율 역할까지 넓히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현재의 수출 체계가 지속 가능한 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의 경우 방산 기업들의 수주가 늘어날 수록 기업들은 개발과 생산에 집중하고 정부에서 후속 지원과 계약 협상 등에 힘을 쏟는다. 반면 이번 정부는 매년 'K-방산 수출 250억 달러 시대'를 외치고 있지만 핵심 주체인 KAI를 반년 가까이 수장 없이 세워두고 모든 짐을 맡기고 있다. KAI가 항공 방산 수출 전반에서 맡는 역할이 크게 확대된 만큼 의사결정 라인과 조직 운영 체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빠르게 사장 선임을 이루고 정부의 지원도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 항공방산 수출은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KAI는 폴란드·필리핀·말레이시아 등 주요 수출국을 중심으로 국산 항공기 공급과 운용이 본격화되며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운용 실적과 신뢰를 바탕으로 수출 외연이 넓어지는 흐름이다.
이 같은 성과는 정부와 군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개발·운용 경험 축적이 토대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KAI 측도 "항공 산업은 정부와 군의 신뢰와 협력이 전제되는 산업"이라며 "정부·군과의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고 현 단계에서 수출 과정에서의 구조적 병목이나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항공 방산 수출 현장에서는 기체 계약이 정비·훈련·후속지원, 항공전자 체계는 물론 경우에 따라 수출금융 협의까지 함께 논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항공기 제작사의 본질적 역할인 기체 개발과 생산에서 나아가 관련 서비스 전반을 함께 묶는 '패키지 사업' 형태가 확산하는 것이다.
실제 KAI의 폴란드 FA-50 수출 사업은 기체 공급과 함께 조종사·정비 인력 훈련 체계 구축, 시뮬레이터 제공, 정비·부품 지원, 후속 운용 지원 등이 연계된 사업으로 추진돼 왔다. 폴란드 국방부와 KAI가 그간 공개한 발표 자료와 설명에서도 훈련(training), 군수·정비 지원(logistics support), 시뮬레이터(simulators) 등의 항목이 포함된 패키지 구조가 반복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기체 제작사가 수출 협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시에, 기술 외 영역까지 폭넓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공전자 MRO 체계 구축이나 AI 기반 고장 예측 기술 연계, 국방용 반도체 협력 논의, 현지 훈련 체계 설계, 계약 조건 조율 등은 일반적으로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조정 부담이 장기화될 경우, 기업의 본업인 기체 개발과 차세대 플랫폼 투자에 투입돼야 할 자원이 분산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기업이 모든 부담을 지기 보다는 정부도 힘을 보태야 해외 수주전에서 경쟁 기업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수출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당장 이러한 부담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역할이 계속 늘어나는 구조가 유지되면 기업 차원에서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수주 잔고가 계속 쌓이고 있는데 결국 피로감이 커지면서 기업이 지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KAI는 이런 구조적 논의에 대해 "항공기 사업은 공군 운용과 군·정부 협력이 핵심"이라며 "현재 수출은 이러한 협력 구조를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지금으로서는 해당 지적에 직접적으로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문제가 가시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구조적 점검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수출 외연이 더 확대될수록 기업이 감당해야 할 조정 부담 역시 누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내년 상반기 KF-21 양산 승인, FA-50 폴란드 2차 패키지 협상과 말레이시아·필리핀 등과의 유지·정비·보수(MRO) 협력 확대, 소형무장헬기(LAH) 첫 수출 인도 등 주요 사업이 몰려 있다.
이에 조직 차원의 의사결정 체계와 책임 구조를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출 사업의 범위와 복잡성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에도, 이를 총괄적으로 조정하고 판단할 조직 운영 체계가 제때 정비되지 않을 경우 사업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루빨리 KAI의 수장이 선임돼야 한국의 항공방산 수주를 둘러싼 리스크를 해소하고 중장기 전략을 원활히 수립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강구영 전 사장의 사퇴 이후 장기간 이어진 경영 공백은 중요한 사업 수주전에서 신속하고 정확한 전략적 판단을 저해하고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KAI는 기체 개발·생산을 넘어 항공 방산 수출 전반에서 맡는 역할이 크게 확대된 상황"이라며 "이 정도 규모와 복잡성을 관리하려면 의사결정 라인과 조직 운영 체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런 부분이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는지에 대한 현장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KAI는 해외 수주 부진과 실적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경영개선위원회'를 가동하고 있지만 수장 부재로 인한 사업 추진 동력 약화는 이어지고 있다. 대형 수주전에서 대한항공 등에게 연달아 고배를 마신 데다 3분기 매출도 전년 대비 12.2%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리더십도 바뀌는 '낙하산 인사' 논란도 사업 연속성과 독립성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수출 성과가 이어지면서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인사와 조직 정비가 지연될수록 주요 투자 판단이나 중장기 전략 결정이 늦어질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KAI는 리더십을 조속히 안정시키고 시장의 변화에 맞는 유연한 전략을 수립해 해외 방산 수주에 적합한 기업으로 거듭나야한다"고 전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