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최근 기업의 이사 충실 의무 범위를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재계는 주주 보호 취지를 공감하면서도 기업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기업 성장을 위한 투자와 자금조달 시도가 주주 손해로 이어질 경우 자칫 무분별한 소송과 그에 따른 비용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법 개정안의 법적 모호성으로 주주가 기업 경영 판단의 사소한 차이까지 소송 사유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다.
자본시장 전문 미디어 딜사이트는 25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K-밸류업 1년,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2025 기업지배구조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한국증권학회장과 여러 기업의 사외이사를 역임한 재무·회계 전문가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단기 투자자, 기관투자가, 외국인 등 다양한 주주집단이 상충되는 요구와 상법 개정으로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 마비 현상이 우려된다"며 "이사는 회사와 주주 모두에 대한 의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이중고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도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분석에 따르면 충실의무 확대로 인한 소송이 연간 300건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송 방어 비용이 늘면 기업 재무부담도 가중될 것이 뻔하다. 신 교수는 "기업들이 연간 수백억원 규모의 소송 대응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사 책임보험 프리미엄도 상승해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짚었다.
또 신 교수는 "주주대표소송의 남용과 이사 책임 증가로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이사는 책임 범위 확대로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고 의사결정을 미룰 것으로 확신한다"고 판단했다.
경영 의사결정이 미뤄지면 투자가 위축될 수도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상법 개정에 따른 영향을 설문조사한 결과 상법 교수 중 65.7%가 '투자 위축'을 주요 우려 사항으로 지목했다.
더불어 신 교수는 기존 법체계에서도 주주 보호 장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상법 개정으로 오히려 규제 중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주주평등원칙(상법 제369조), 부당행위취소권(제406조), 주주대표 소송 등이 그것이다.
그는 균형 잡힌 입법 방향으로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소송 제기 요건 강화 ▲배임죄 적용 범위 축소 등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미국 델라웨어주 모델을 언급했다. 미국 델라웨어는 회사법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두고 있다는 근거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델라웨어주의 회사법에는 '회사나 그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이 있는 경우 이사의 면책 불가'라는 문구가 있지만 이 조항은 정관의 선택적 기재 사항으로 열거돼 있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가 강행 규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사 경영 판단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소송 제기 지분 요건도 기존 1%에서 3%로 상향해 무분별한 소송을 방지하고 경영 의사결정에 대한 형사처벌 제외로 기업 활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상법 개정안이 아니라 실질적인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방안 마련 필요성도 언급했다. 실효성 있는 방안의 예시로 ▲금융투자협회 등 자율규제기구의 소송비용 지원 기금 조성 ▲이사 결정으로 직접적 피해 발생의 경우 소송 지원 범위 한정해 남소(소송 남발) 방지 ▲부당한 자산 매각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시 소송 지원 ▲계열사간 부당거래 규제 등을 제시했다.
신 교수는 "계열사간 부당거래 발견시 소액주주가 소송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 비용을 지원하면서 자율규제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소액주주 보호 방안"이라며 "이를 통해 기업은 장기적 경영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한편 소액주주의 권리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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