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주명호 기자]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실패는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계파 갈등을 근본 원인으로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합병 이후 두 은행 출신은 융합보다는 반목의 형태로 공존해 왔다. 우리금융 민영화 이후 수면 위로 표출된 계파 갈등은 그룹 전체를 흔들었다. 이런 조직문화 안에서 내부통제 역시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부정 대출 의혹의 시작점이 상업·한일은행 출신 간 반목에서 나왔다는 관측 탓이다. 지난해 취임 시 조직 내 분열과 반목을 없애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1년 만에 이같은 사태가 터지면서 임 회장의 연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의 전신은 1998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합병으로 탄생한 한빛은행이다. 한빛은행은 합병 후에도 IMF 외환위기로 인한 부실을 해결하지 못해 2000년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공적자금을 받게 됐다. 이후 2002년 사명을 우리은행으로 변경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우리은행 초기에는 관치금융의 성격이 짙었던 만큼 계파간 갈등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초대 이덕훈 행장과 뒤를 이은 황영기 행장, 박해춘 행장 모두 외부 인사라는 점도 보완재로 작용했다.
은행장 자리를 두고 두 계파간 긴장 관계가 높아진 것은 2008년부터다. 첫 내부출신 행장으로 이종휘 행장이 선임되면서다. 이종휘 행장이 한일은행 출신인 만큼 다음 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으로 번갈아 가며 나와야 한다는 게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이종휘 행장에 이어 2011년 선임된 이순우 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은 2014년 이광구 행장의 임명으로 상업은행 출신이 연이어 선임된 것이다. 이광구 행장은 재임 중 그간 숙원이었던 우리금융 민영화를 이뤄냈지만 특혜채용 비리에 연루돼 자진 사임해야 했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이같은 내용을 담긴 문건을 공개했다. 해당 내부 문건은 한일은행 출신 인사가 심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 역시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금융감독원은 해당 건에 대한 제보를 받아 현장검사를 시작했다. 손 전 회장과 반복했던 상업은행 출신들이 제보했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손 전 회장 당시 권광석 전 행장과의 관계도 이로 인해 다시 거론된다. 상업은행 출신인 권 행장은 2020년 우리은행을 맡으며 손 전 회장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2년 임기에 1년 연임이 이어졌던 것과 달리 권 행장은 2년(1+1)년의 임기만 마치고 물러났다.
한일·상업은행의 갈등은 계열사 CEO 자리까지도 다툼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우리카드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은행의 자회사였던 우리카드는 2013년 분사를 통해 지주 자회사로 변경됐다.
우리카드 분사 후 첫 CEO인 정현진 사장은 2013년 취임 3개월만에 퇴진해야 했다. 당시 이순우 행장이 지주사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한일은행 출신인 정 사장을 곧바로 내쳤다는 해석이다. 그 뒤는 상업은행 출신인 강원·유구현 사장이 연이어 자리에 올랐다.
이후 2018년 한일은행 출신인 정원재 사장이 우리카드를 맡았다. 정 사장이 2년 임기, 1년 연임을 마친 후 상업은행 출신 김정기 사장이 선임됐다. 김 사장은 이전 사장과 다르게 연임에 실패하고 2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손 전 회장의 두 번째 임기 때다. 현임 박완식 사장은 한일은행 출신이다.
외부에서는 이같은 선임 흐름을 납득하기 힘든 기형적 형태로 본다. 계파와 별개로 능력을 우선하는 선임이 아닌 번갈아 권력 잡기의 형태로 밖에 비춰질 수 없어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돌아가며 수장직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볼 사람이 있을까"라며 "능력이 뛰어난 인사도 여기에 가려져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 회장 역시 16년만의 외부출신 회장으로서 이같은 계파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처음부터 드러냈다. 임 회장은 지난해 취임 일성으로 "음지의 문화는 이제 반드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잇따른 횡령사고에 직전 회장이 연루된 부당대출 의혹까지 나오면서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벌써 임 회장의 연임이 불투명하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금융당국이 우리은행 뿐만 아니라 우리금융지주까지 제재 대상으로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우리금융지주가 올해 3월 부정대출 관련 사항을 인지했음에도 이사회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보고 책임자에 대한 제재를 분명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지난 25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누군가가 명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력한 조치를 시사하기도 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