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성준 차장]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건설'이라 하면 도로와 교량, 댐이 먼저 떠올랐다. 산업화를 뒷받침할 기반시설이 필요했고, 토목은 곧 국가 성장의 상징이었다. 이어 도시가 팽창하자 주택 수요가 폭발했고, 건설사는 곧 집을 짓는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인구 감소와 부동산 경기 침체, PF(프로젝트파이낸싱) 위기까지 겹치며 건설업의 전통적인 성장 엔진은 한계에 다다랐다. 더 이상 도로를 넓히고 아파트를 더 짓는 것만으로는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건설업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사회 구조와 기술이 급격히 변하면서 필요로 하는 인프라도 달라졌다. 과거 물리적 기반시설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데이터와 전력이 사회의 동맥이 되고 있다. 최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수장과 기업가들이 공통으로 내세운 키워드는 AI(인공지능)였다.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던 산업혁명과 정보화 혁명을 지나, 인공지능 혁명이라는 세 번째 대전환기가 도래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AI 관련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산업 기반과 기술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특히 반도체, 전자, 전력, 통신, 건설이 한 축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은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다.
실제로 지난달 1일 한국을 방문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DC) 프로젝트 '스타게이트' 협력 논의를 진행했다. 예상 투자 규모만 5000억달러(약 700조원)에 달한다. 물론 해당 프로젝트가 국내에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 건설사들이 해온 주택사업과 비교하자면 규모나 이익 측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과 같다. 일부만 도급공사나 인프라 설비로 흘러도 업계에는 단비가 될 전망이다.
더불어 AI 확산은 이미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폭증시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460TWh에서 2030년 945TWh로 5년 뒤 두 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센터와 발전소, 송전망을 함께 설계·시공할 수 있는 기술이 건설사의 새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이미 국내 대형 건설사들도 점차 포트폴리오를 AI 관련 인프라스트럭처로 확대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건립뿐만 아니라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SMR(소형모듈원전) 등 에너지 산업의 지분투자까지 활발히 병행하는 추세다.
최근 국내에서도 SK그룹과 AWS(아마존웹서비스)가 울산에 7조원 규모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개발을 추진 중이다. 2029년까지 국내 데이터센터는 700곳 이상으로 늘고, 전력 수요는 49GW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원전 수십기가 추가로 필요할 만큼의 전력량이다. 자연스럽게 건설사의 새로운 시장이 데이터센터 인프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발전소, ESS(에너지저장장치), 변전소, 원전 등 전력 관련 공사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특히 AI 산업 특성상 전력 안정성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고효율 냉각 시스템, 초고압 변전설비, ESS 구축까지 패키지 형태로 발주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건축기술 뿐만 아니라 전력과 정보통신도 함께 융합된 종합 프로젝트로 인식돼 대형 건설사의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AI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 산업만의 영역이 아니다. AI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담는 물리적 공간인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이를 지탱할 전력망과 냉각설비, 송전선로, 원전이 함께 들어서야 한다.
이는 곧 건설업의 새로운 무대이자 성장의 기회다. 도로와 댐, 아파트를 짓던 시대가 산업화의 초석이었다면, 이제는 데이터센터와 전력기기를 짓는 건설사가 승자로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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