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동호 기자]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갈등이 격화되면서 금융당국이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현재 고려아연 경영권을 가진 최윤범 회장 측과 최대주주인 영풍 및 MBK파트너스 연합은 상호간 비방과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들은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수자금의 출처와 규모, 실현 가능성 등에 대한 의혹을 상호간 제기했다. 또한 상대방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공개매수가 인상 계획 등을 공시 전에 언론에 흘리는 등의 행위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다양한 의혹과 주장 등에 대해 살펴보는 동시에 고려아연과 영풍에 대한 회계심사에도 착수했다. 이번 분쟁이 지난해 있었던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분쟁과 유사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그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금감원, 전방위 조사 착수
16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현재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양측의 불공정행위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또한 전날(15일) 고려아연과 영풍에 대한 회계심사에 착수했다.
이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지난 8일 지시에 따른 후속조치다. 이 원장은 최근 상장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개매수 과정에서 경쟁이 과열돼 단기에 주가가 급등하고,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되면서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고려아연과 영풍, 양측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먼저 고려아연 경영진과 영풍-MBK연합이 각자의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가에 영향을 주기 위해 풍문이나 허위 사실을 유포했는지를 살펴볼 방침이다. 특히 자신들의 공개매수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혹은 상대방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시세에 영향을 줬는지 등을 살필 예정이다.
이는 자본시장법상 시장질서 교란행위, 부정거래행위 등으로 행정 제재나 처벌이 가능할 전망이다. 시장질서 교란행위와 부정거래 행위는 풍문을 유포하는 등의 방식으로 주식 가격에 대해 오해를 일으키거나 왜곡할 우려가 있는 행위 등을 가리킨다.
만약 시장질서 교란행위가 확인될 경우 금융위원회는 5억원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부정거래 행위는 최고 무기징역과 함께 주식 거래로 얻은 이익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형이 가능하다.
앞서 금감원은 근거없는 루머나 풍문 유포 등으로 투자자의 잘못된 판단이나 오해를 유발하는 시장질서 교란행위 등 불공정거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소비자 경보 '주의' 단계를 발령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영풍과 고려아연 양쪽에서 서로 (금감원에) 제보를 하고 있다"며 "그 내용의 사실 여부와 실제 주가에 영향을 줬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에)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며 "실제 조치까지 가려면 1년이 넘어가는 것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또한 금감원은 전날 고려아연과 영풍에 대해 회계심사에 착수한다고 통보했다. 공개매수 진행 과정에서 제기된 충당부채나 투자주식 손상 등 여러 의혹에 대해 소명을 요구하고 회계처리기준 위반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감리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통상 회계심사는 공시된 자료에 대한 확인과, 자료 요구, 소명 등의 형태로 진행되는데, 3∼4개월 정도 기간이 소요된다.
금감원은 이후 회계 위반 혐의가 발견되면 감리조사에 착수, 감사인 등을 불러 깊이 있는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 고려아연 경영진 VS 영풍-MBK, 경쟁 과열에 상호비방 난무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달 12일이다. 영풍은 이날 MBK파트너스와 함께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고려아연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고려아연 경영진은 즉각 공개매수에 반대하는 의사표시와 함께 최대주주인 영풍이 기업사냥꾼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매수라고 비난했다. 또한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그간 국내에서 회사를 인수한 다음 핵심 자산을 매각하거나 과도한 배당금 수령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의 약탈적 경영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주일 후인 같은달 19일 최윤범 회장은 계열사와 협력사 임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온 힘을 다해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저지할 것이고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이 같은 서한을 두고 고려아연이 곧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것이란 신호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이달 2일 영풍이 제기했던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하자 고려아연은 즉시 대항 공개매수에 나섰다. 공개매수가는 영풍 측이 제시한 가격보다 높은 83만원이다.
문제는 최 회장이 영풍과 MBK의 공개매수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공개매수 저지 발언을 하면서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최 회장 측의 대항 공개매수 가능성에 고려아연 주가는 최초 영풍 측의 공개매수 가격을 훌쩍 넘어서며 급등세를 보였다. 영풍 역시 재차 공개매수가를 75만원으로 인상했지만, 주가는 연일 출렁였다.
고려아연의 대항 공개매수 이후 영풍 측은 다시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과 같은 주당 83만원을 제시했다. 이후 고려아연은 다시 89만원으로 자사주 매입가격을 높였다.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는 지난 14일 종료됐지만, 고려아연의 공개매수는 오는 28일까지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상반된 내용의 정보를 시장에 다수 유포했다. 금감원은 이에 대한 사실 여부와 시세조종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 SM엔터 경영권 분쟁, 승리한 카카오는 새드엔딩?
금감원은 과거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 주식 공개매수시 이를 방해한 카카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카카오가 특정 증권사 창구를 통해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SM엔터 시세를 조종, 공개매수를 방해했다는 혐의다.
이에 인해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등이 구속됐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지난해 2월 SM엔터 경영진이 카카오에 대한 제3자 배정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SM엔터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카카오는 이를 통해 SM엔터를 인수하려 했으나, SM엔터 창업주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반발하면서 자신의 지분 14.8%를 하이브에 넘겼다.
이수만 전 총괄의 지분을 인수한 하이브는 이어 SM엔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는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원아시아파트너스 등과 공모해 SM엔터 주가를 공개매수가였던 12만원보다 높게 고정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았다.
카카오의 방해로 공개매수에 실패한 하이브는 결국 SM엔터 인수를 포기하고 지분 일부를 카카오에 넘기면서 경영권 분쟁은 종결됐다.
카카오는 SM엔터 인수에 성공했지만, 이후 김범수 위원장과 배재현 전 대표 등이 구속되는 결과에 직면했다. 검찰은 김범수 위원장이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시세조종 계획을 사전에 보고받아 승인했고, 카카오 임원들은 조직적으로 자금을 동원해 SM엔터 주가를 조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과 서울남부지검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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