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윤기쁨 기자] 한국산업은행이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전사 총력전에 돌입했지만 정권마다 반복된 관제 펀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와 민간 주도 운용 방식이 공공성을 훼손하고 이해상충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대통령의 유연한 운용이라는 주문을 받아들여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여신(대출)과 투자 조직 간 칸막이를 강제로 허물었고 월급쟁이에서 재벌 오너가 된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 민간 거물을 지휘부에 앉히는 등 유례 없는 시도로 펀드 성공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국민성장펀드 운용을 위해 '국민성장펀드부문'을 신설해 산하에 4개국(총괄사무국·대출운용국·투자운용국·심사지원국)과 15개팀을 배치하는 대규모 전담 조직을 구축했다. 과거 정책 펀드들이 별도 전담 조직 없이 기존 부서의 부수 업무나 파견 형식의 TF로 운영됐던 것과 비교하면 전에 없던 적극적인 의지를 높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주목할 점은 보신주의가 만연한 국책은행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 꺼내 든 성과평가(KPI) 개편 카드다. 산업은행은 기업금융 담당자(RM)가 발굴한 딜이 국민성장펀드 투자로 이어질 경우, 이를 자금공급 실적으로 '이중 인정'해주는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대출 실적만 챙기던 RM에게 투자 영업 동기를 부여해 딜 소싱 채널을 전사적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투자 부서(PM)와 지원 부서의 평가 지표에도 '국민성장펀드 기여도'를 신설해 은행 내 모든 조직이 원팀으로 움직이도록 강제성을 부여했다.
그럼에도 업계는 이번 펀드가 역대 정권마다 반복된 관제 펀드의 실패 사례를 밟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펀드',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및 '성장사다리펀드',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펀드' 등은 모두 당시 정권의 핵심 아젠다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성됐지만, 정권 교체 후 동력을 상실하며 유명무실해졌다. 실패 원인으로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급조, 시장 수요와 괴리된 투자 대상, 정권 교체 후 사라진 정책 일관성 등이 꼽힌다. 국민성장펀드도 150조원 중 75조원을 민간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정책의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운용 구조의 적절성에 대한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산업은행은 관치 금융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전략(민간)과 집행(산은)이 분리된 투톱 거버넌스를 도입했다. 펀드의 큰 그림을 그리는 민간 공동위원장에는 박현주 회장과 서정진 회장이, 실무를 총괄하는 산업은행 국민성장펀드부문장에는 신혜숙 부행장이 각각 내정됐다.
문제는 이질적인 두 집단의 결합이 시너지가 아닌 리스크로 비화할 가능성이다. 박현주·서정진 두 회장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가장 공격적인 투자를 주도해온 인물들로 수익률 제고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안정성과 공공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정책 펀드의 성격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특히 이해상충 이슈는 국민성장펀드의 신뢰도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다. 박 회장은 과거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이슈, 서 회장은 계열사 간 내부 거래 및 회계 이슈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업계는 이번 펀드가 위원장들의 관련 계열사의 밸류업 도구로 활용되거나, 특정 이해관계가 얽힌 산업군에 투자가 편중될 개연성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특히 수익성을 쫓는 민간 위원장들이 대형 프로젝트나 우량 자산은 이들이 출자한 민간 펀드에 우선 편입시키고, 수익성은 낮지만 리스크가 큰 정책성 투자는 공적 자금에 떠넘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상황이 이렇지만 이를 견제해야 할 산업은행 수뇌부의 존재감은 사실상 미약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혜숙 부행장은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에 특화된 정통 뱅커 출신이다. 조 단위의 큰 딜을 주도해온 민간 위원장들에 비해 투자 경험과 시장 장악력이 부족한 만큼, 논리적인 제동을 걸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산업은행이 민간의 결정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지원 부서로 전락할 경우 견제 기능 상실에 따른 공적 자금 피해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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