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그룹의 승계와 지배구조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승계의 큰 그림은 두가지다. 실질적인 후계자인 김동관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김동관·동원·동선 3형제의 안정적인 승계와 핵심 사업인 '방산·에너지' 중심의 그룹 재편이다. 삼형제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면서도 김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화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김승연 회장이 건재하지만 최근 그룹 재편이 빨라지는 것도 그룹 지배구조를 안정화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향후 한화의 계열사 정리와 합병을 통한 승계,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한화그룹의 승계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김승연 한화 회장 주도 하에 삼형제에게 주요 사업을 각각 맡긴 후 그룹 지주사 격인 ㈜한화의 오너 3세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이를 통해 각 계열사별로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승계 핵심인 한화에너지의 기업공개(IPO) 등을 통한 상속세 자금 마련과 지분 확대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이후 김 회장 사후 한화그룹의 3형제는 장기적으로 각각 분리된 사업 영역을 하나씩 맡아 독립 경영하는 계열 분리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화그룹 측은 김 회장이 여전히 경영활동 중인 상황으로 계열분리 가능성에 전혀 계획된 바 없다는 일관된 입장이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결국 삼형제가 핵심 사업을 나누고 그룹 내 재편이 끝나면 효성그룹처럼 계열 분리가 본격화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 김동관·동원·동선 3형제는 그룹 내 역할을 분담하며 저마다 사업 확장에 공들이고 있다.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방산·조선·에너지, 차남 김동원 사장은 금융, 삼남 김동선 부사장은 유통·로봇 사업을 맡아 경영을 펼친다. 김 부회장을 필두로 한화의 핵심 사업인 방산·조선·에너지에서 '초격차' 리더십을 확보하고, 형제 간 사업부 재편을 통해 각 계열사별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당장 삼형제가 계열 분리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재계에선 훗날 김승연 회장 사후 시간이 흐르면 계열 분리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 그룹 내 주요 사업의 인적분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데다, 3형제의 사업 역할 분담이 마무리했기 때문에 언제든 계열분리 작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승계의 키는 김동관·동원·동선 3형제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한화에너지다. 3형제는 한화에너지를 통해 그룹의 정점인 ㈜한화를 간접 지배하며 그룹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현재 한화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한화가 있다. 그 아래로 방산·조선·에너지를 비롯 금융, 유통 계열사들이 병렬구조로 배치돼 있다. 김승연 회장은 ㈜한화 지분 22.65%(1697만7949주)로 최대주주다. 반면 김동관 부회장의 지분은 4.91%에 그치고 김동원·동선 형제는 각각 2.14%에 불과하다. 삼형제가 한화에너지(22.16%)를 통해 우회 지배를 하고 있지만 김 회장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한화에너지가 김 회장의 한화 지분을 넘길 가능성은 적다.
이에 한화그룹 승계의 마지막 퍼즐은 지분 상속이다. 후계자인 김동관 부회장이 그룹을 온전히 지배하려면 아버지인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한화의 지분을 증여 혹은 상속 받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김동관 부회장이 김 회장 지분의 50%를 나머지 두 형제가 25%, 25%씩 나눠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에너지 지분율처럼 5대 2.5대 2.5로 김 회장의 지분을 나눌 것"이라며 "실질적인 후계자이자 장남인 김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지분을 똑같이 나누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최고 50%로 최대주주 할증 과세 20%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60%가 된다. 김승연 회장의 ㈜한화 지분가치는 10일 종가(5만2300원)를 적용하면 8879억원이다. 이에 따른 상속세는 5328억원에 이른다. 앞서 2023년 3형제는 모친인 고(故) 서영민 여사의 ㈜한화 지분(106만1676주)을 동일하게 35만3892주씩 상속 받았다. 당시 3형제는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했다. 이는 상속세를 일시 납부하지 않고 10년간 최대 11회에 걸쳐 나눠 내는 제도다.
3형제가 김승연 회장의 지분 상속세를 11회에 걸쳐 낸다면 매회 대략 484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김 부회장이 50%인 240억원, 나머지 두 형제가 120억원씩 나눠서 낼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총수는 보수와 배당 등을 통해 상속재원을 마련한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3곳의 사내이사를 겸직 중이다. 각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김동관 부회장의 2023년 보수는 총 92억원이었다.
이에 배당을 늘려 상속재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최근 ㈜한화는 2024년 결산배당으로 보통주 80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김동관 부회장은 배당금 29억원을 수령했다. 가족회사인 한화에너지의 경우 ㈜한화 지분 22.16%를 들고 있어 이번 배당으로만 133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한화에너지 기업공개(IPO)를 통해 승계 및 지분스왑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언급된다. 한화에너지는 최근 일부 증권사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배포하고 IPO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에너지가 상장하게 되면 ㈜한화와의 합병도 쉬워지고 지분 매각이나 주식담보대출을 통한 상속세 마련도 쉬워진다.
이와 관련해 한화그룹 측은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서 필요한 경쟁력 강화 및 미래 성장 동력, 국내외 신인도 제고를 위해 IPO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승계 자금 활용 및 ㈜한화와의 합병 계획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서 전망하는 또다른 유력 승계 시나리오는 한화에너지와 ㈜한화의 합병이다. 이 경우 오너 3세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로 ㈜한화 지분율을 끌어올리는데 효과적이다. 이렇게 되면 지배구조는 3형제→한화에너지→㈜한화→계열사로 이어진다.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7월 ㈜한화 공개매수로 주식 389만8993주를 확보했고 곧이어 고려아연이 보유한 ㈜한화 주식 543만6380주를 인수해 지분율을 올렸다. 이를 통해 지난해 7월 9.7%에 불과했던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율은 현재 22.16%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이 경우 김승연 회장의 지분이 희석될 가능성이 높아 김 회장 생전에는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훗날 한화에너지와 ㈜한화를 합병한 후 다시 3개로 쪼개는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동관 부회장이 동생들로부터 방산, 조선 등을 넘겨 받아 한화에너지 존속회사를 보유하는 한편 김동원 사장은 금융부문을, 김동선 부사장은 유통·로봇 부문을 따로 떼내 계열분리하면 각각 신설회사를 맡게 된다. 실제 한화그룹의 사업 분할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한화는 모멘텀부문을 물적분할로 떼어내 ㈜한화의 100% 자회사로 뒀다. 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회사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를 인적분할하고 신설 지주사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현 한화비전)를 세워 그 밑으로 편입시켰다.
익명을 요청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화그룹이 시너지, 역량 집중 등의 명분을 앞세워 인적분할 방식으로 자회사를 지속 늘리고 있다"며 "한화에너지로 ㈜한화 지분을 늘려 지배력을 확대할 뿐 아니라 향후 3형제가 각자의 주력 기업을 나눠 가지기 위해 분할도 활발히 추진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 가운데 계열분리 및 승계 등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현재 3형제는 각자가 맡은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며 "승계나 계열분리는 계획된 바 없고 현재 관련해 이야기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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