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뱀띠 해인 을사년(乙巳年)을 맞는 세계 경제는 '차이메리카', '신냉전 2.0'의 커다란 줄기 속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치열하게 생존해 나가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특히 미중 무역갈등 심화는 글로벌 시장의 최대 불확실성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변화와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하 조정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이에 딜사이트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이러한 난국을 극복해 나갈 새로운 CEO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대한항공이 2018년 이후 약 6년 만에 부회장직을 부활시키고, 최장수 전문경영인(CEO)인 우기홍 대표이사 사장을 내정했다. 우 대표의 부회장 승진은 단순한 직급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애초 대한항공의 부회장직 도입이 오너리스크를 없애기 위한 일종의 출구전략이었던 만큼 오너가의 복심만이 얻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 대표는 부회장 승진 이후 대한항공 대표직을 유지하거나, 대표에서 내려오더라도 통합 대한항공 총괄이라는 더 넓은 범위의 업무를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 1월 인사서 부회장 승진 예고…명실상부 '2인자'
30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내년 1월 중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하고 우 대표를 부회장으로 승진시킬 예정이다. 이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겸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이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앞서 조 회장은 지난달 16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관련 임직원 간담회에서 우 대표의 내정 계획을 밝혔다.
조 회장 책사이자 멘토로 불리는 우 대표는 '조원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962년생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카이스트(KAIST)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 1987년 대한항공 기획관리실로 입사한 우 대표는 여객전략개발부와 미주지역본부, 경영전략본부 등 여객과 영업, 노선, 전략 등 다양한 부서를 두루 거쳤다.

우 대표가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발휘한 것은 2017년 3월 대한항공 대표이사(부사장)로 선임되면서다. 대한항공의 경우 단일 대표이사 체제가 아닌, 최소 2명에서 최대 4명의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그려왔다. 우 대표가 선임됐을 당시에는 고(故) 조양호 선대회장과 조 회장 2명이 이미 대표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우 대표는 조 선대회장이 2019년 별세 이후 오너 3세인 조 회장이 총수에 오르며 실시한 첫 임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 2인자 입지를 다졌다.
업계는 우 대표의 부회장 승진이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반응 일색이다. 그가 조 회장을 보필해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대업을 완수한 만큼 성과 보상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대한항공은 2022년 연간 영업이익(연결기준)과 순이익이 각각 2조80306억원, 1조7295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달성했다. 또 우 대표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태스크포스(TF) 총괄을 맡았다.
◆ 초대 부회장, 오너리스크 해소 목적…우 대표 '실질 위상' ↑
대한항공은 2018년 4월 처음으로 부회장직을 신설했으나, 2년도 채 안 돼 사라졌다. 대한항공 최초의 부회장은 석태수 전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이었다. 이 시기 대한항공은 오너 3세들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내외적으로 질타를 받던 상황이었다. 조 선대회장은 경영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전문경영인을 도입했고, 이른바 '가신'으로 분류되던 석 전 사장(당시 한진칼 대표이사)을 선임했다. 한진그룹은 계열사 간 별도 직급 체제를 갖추고 있는 터라 석 전 사장은 한진칼에서 사장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석 전 사장은 조 선대회장의 막강한 신임을 받은 덕분에 '한진가(家)의 집사'라고까지 지칭되던 인물이다. 대한항공 경영기획실장과 미주지역본부장, ㈜한진 대표이사, 한진해운 대표이사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우 대표의 부회장 내정은 그가 조 회장 최측근 입지를 다시 한 번 굳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석 전 사장과 비교할 때 무게감이 다르다. 석 전 사장의 경우 오너리스크 해결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부회장직에 올랐던 반면, 우 대표는 실질적인 권한과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돼서다.
실제로 석 전 사장은 2019년 말 조 선대회장 측근집단이 대거 용퇴할 때 대한항공 부회장에서도 물러났다. 다만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이 발발했을 당시로, 석 전 사장은 지주사에 남아 오너가의 방어 전략을 주도하기도 했다.
◆ 대표직 유지 가능성…일각선 아시아나 통합 집중 관측
우 대표의 명확한 거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가 대한항공 대표이사 임기를 그대로 가져갈 것이라는 관측부터 대표이사가 아닌 부회장으로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통합작업(PMI)을 관장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지난 12일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먼저 우 대표가 대한항공 대표직을 유지할 가능성이다. 우 대표의 사내이사 임기는 오는 2026년 3월까지로 아직 남아있다. 그가 40년 가까이 글로벌 항공업계에서 막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뒀다는 점에서 당분간 조 회장과 우 대표 공동 체제를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한항공이 3인 이상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있다. 대한항공이 과거부터 다수의 대표이사 체제에 익숙하다는 점은 설득력을 가진다. 더군다나 우 대표가 부회장으로 승진하면 대한항공 내 사장 직급을 가진 임원이 없어지게 된다.
한편에서는 우 대표가 사내이사 임기는 그대로 가져가지만, 후임자에게 대표직을 물려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화학적 결합이 본격 개시되는 만큼 대한항공의 DNA를 이식하는 작업이 중요한 상황이다. 이에 우 대표가 일관되고 체계적인 통합 절차를 지휘하는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우 대표는 대한항공 내부에서 대체할 인물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하지만 대한항공은 우 대표의 뒤를 이을 차세대 리더십의 적극 육성도 필요한 만큼 대한항공의 인사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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