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오는 24일이면 회장에 오른 지 6주년을 맞는다. 조 회장은 고(故) 조양호 선대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대권을 물려받았다. 한진그룹은 '포스트 조양호 체제'를 맞이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만 43세의 나이로 지휘봉을 잡은 조 회장도 자신의 경영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조 회장 체제에서 많은 변화를 이뤘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으로 손꼽히던 기업문화는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바뀌었으며, 외부 세력의 공격을 받던 경영권은 한층 견고해졌다. 특히 한진그룹은 국내 최대 항공그룹으로 거듭나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 2003년부터 경영수업, 곧 취임 6주년…경영능력 차곡차곡 입증
7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조 회장은 2019년 4월27일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부친인 조 선대회장이 작고한지 보름여 만이었다. 1976년생인 조 회장은 조 선대회장의 삼남매 중 장남이다. 27세이던 2003년 한진그룹 IT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 차장으로 입사하며 경영 수업에 돌입했다. 2살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개명 후 조승연)보다 4년 느리지만, 7살 여동생 조현민 ㈜한진 사장보다는 4년 빠르다.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와 자재부, 여객사업본부, 화물사업본부장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친 조 회장은 현장 경력을 주로 쌓았다. 특히 2014년에는 대한항공 경영전략 및 영업부문 총괄 겸 그룹 경영지원실장을 겸직하며 그룹 내 지배력을 넓혀갔다. 이 시기 조 회장은 그룹 지주사 한진칼 대표이사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후계자 입지를 굳히기도 했다. 아울러 2016년 1월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대한항공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두각을 나타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대표를 맡은 첫해부터 호실적을 기록했다. 2016년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1.6%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26.9% 증가한 1조1208억원을 기록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영업이익 1조원 돌파가 2010년 이후 6년 만에 달성한 성과였다는 점이다. 저유가와 원달러 환율 하락 등 우호적인 업황이 조성된 점이 맞물린 결과지만, 조 회장은 성과를 인정받아 2017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 선대회장 경영권 분쟁 속 작고, 가족 간 갈등도…최종적으로 '승리'
하지만 조 회장이 왕좌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8년 느닷없이 행동주의 사모펀드를 표방하는 KCGI가 한진칼 주식을 사들이며 경영권 분쟁에 불을 지핀 것이다. KCGI는 단숨에 한진칼 2대주주로 등극하며 조 회장 일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 선대회장이 2019년 3월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직 수성에 실패한 배경에도 KCGI의 공격적인 행보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진그룹은 조 선대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지만, 20년 만에 경영권을 박탈 당하면서 상당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은 점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열흘 넘게 이어지던 한진그룹 리더십 공백은 조 회장이 한진그룹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끝났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동일인(총수) 변경 자료 제출일을 연기하면서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동생의 경영 승계에 반발한 조 전 부사장이 KCGI와 손을 잡으면서 남매간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에 돌입했다.
조 회장은 2020년 말 사실상 경영권 분쟁을 종식시켰다. 아시아나항공과 계열 저비용항공사(LCC)를 통째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다. 당시 국내 항공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주채권단이던 산업은행의 인수 제의를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특히 산은은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영구전환사채(CB)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지원했다. KCGI 측은 산은이 한진칼 주요 주주(지분율 11%)에 오르자 분쟁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조 회장은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 팬데믹 위기 이겨낸 역발상, 유연한 조직문화…아시아나 인수 마침표
조 회장은 과거 재계에서 유독 조용하고 존재감이 크지 않은 재계 3세였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 시장을 압도하는 통찰력과 판단력을 가진 리더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했다. 대표적으로 조 회장이 세계 각국의 하늘길이 멈추면서 주기장에 서 있는 유휴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하자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그 결과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들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나홀로 흑자경영을 달성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또 있다. 항공업 특성상 오랜 기간 쌓아온 전문성과 노하우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이른바 'OB'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 회장은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젊은 조직으로의 혁신을 추진했다. 단순한 경영진 교체에서 그치지 않았다. 조 회장은 '노타이' 근무 등 복장 전면 자율화에 나섰으며 직급 단순화와 점심시간 선택제, 정시 퇴근 팝업 메시지 표출 시스템 등을 새롭게 도입했다.
조 회장은 권위적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직원들과의 자유로운 소통에도 신경 쓰고 있다. 실제로 조 회장은 지난해 3월에 이어 올해 3월에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대한항공 본사에서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진행했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 인수 작업을 4년 만에 마무리했다. 업계에서는 10위권 중반이던 한진그룹의 재계 순위(자산 기준)는 대폭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 항공그룹으로 재탄생했을 뿐 아니라 글로벌 순위 역시 한 자릿수를 넘볼 것으로 기대된다.
조 회장은 지난달 11일 열린 신규 CI 공개 행사에서 "통합 대한항공이 출범하면 규모(순위)보다는 질을 더 따지고 싶다"며 "고객의 사랑을 받고, 고객이 믿을 수 있는 항공사가 되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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