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농사는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린 뒤 한 해 동안 정성껏 작물을 돌보더라도 결국 어떤 토양에 뿌리를 내렸는지가 과실의 품질을 좌우한다. 좋은 작물을 얻기 위해서는 pH 수준, 유기물 함량, 배수 상태 등 토양의 다양한 조건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결국 아무리 좋은 씨앗을 가져와도 토양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남양유업 역시 마찬가지다. 남양유업은 최근 60년간 이어져 온 오너경영 체제를 끝내고, 사모펀드 운용사인 한앤컴퍼니가 올해 초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경영권이 새 주인을 맞았다. 경영권 다툼과 오너리스크로 오랜 기간 혼란을 겪었던 남양유업에게 오랜시간 남아있던 척박한 토양을 교체할 시기가 찾아왔다.
남양유업은 1964년 창립 이후 국내 최초로 분유를 생산하며 유가공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당시 90년대 중반까지 '아인슈타인 우유' 등이 큰 인기를 끌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13년 대리점 갑질 사건을 시작으로 경쟁사 비방 댓글 논란, 외손녀 마약 투약 사건 등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경쟁사를 깎아내리는 듯한 광고도 논란도 있었다. 이로 인해 기업윤리와 도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고 남양유업은 불매운동의 상징적인 기업으로 낙인찍히며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지난 10년간 쌓인 부정적 이미지는 여전히 남양유업을 따라다닌다. 선호하는 유제품에 '남양' 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으면 구매를 포기하는 소비자들도 여전하다. 일부는 필요에 따라 남몰래 숨어서 제품을 구매할 정도다.
이 같은 소비자 불신은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남양유업의 연매출은 2019년 이후 1조 원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수익성도 적자로 전환해 매년 약 700억~800억원대의 손실을 기록했다.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정신이 필요한 시점에 올해 1월 남양유업의 최대주주에 오른 한앤컴퍼니는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고 '경영정상화'를 선언했다.
남양유업은 60년간의 오너체제를 벗어 던지고 토양 다지기부터 시작했다. 대표이사제를 폐지하고 이사회가 의사결정 및 감독, 집행임원이 회사 운영을 전담하는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했다. 이어 준법 윤리 경영을 위한 대표집행임원 직속 '준법경영실'을 신설했다. 또한 '준법 윤리 경영 쇄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부진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며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경영 효율화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이 같은 노력은 빠르게 결실을 맺고 있다. 남양유업은 20분기 만에 수익성 흑자를 기록하며 변곡점을 맞았다. 한앤컴퍼니 체제로 전환한 지 6개월 만이다.
물론 이 모든 노력은 한앤컴퍼니의 성공적인 엑시트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남양유업에게 비옥한 토양을 마련해주며 내실을 다시고 한앤컴퍼니는 이를 토대로 풍성한 과실을 거두게 된다면 누이좋고 매부좋고 아닐까. 이를 위해서는 비옥한 토양부터 다지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토양 정비를 끝낸 한앤컴퍼니가 이제 씨를 뿌리고 가꾸며 남양유업의 신뢰 회복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 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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