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헥토이노베이션이 블록체인 지갑 전문기업 헥토월렛원(구 헥슬란트)에 90억원 넘는 자금을 투입한 배경에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가 자리하고 있다. 단순 지분 투자를 넘어 헥토그룹의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를 완성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평가다.
◆ 12명 회사에 92억…몸값 핵심은 라이선스
4일 업계에 따르면 헥토이노베이션은 지난해 9월 월렛원 지분 47.15%를 92억원에 인수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당시 거래 기준으로 산정된 월렛원의 기업가치는 약 197억원이다. 직원 수가 12명 안팎인 소규모 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수금액이 적지 않다. 단순 계산하면 직원 1인당 기업가치가 16억원을 웃돈다.
월렛원에 이 같이 높은 가치를 둔 것은 인력이나 매출 구조보다 라이선스와 지갑 인프라의 전략적인 가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헥토이노베이션이 높은 가격을 감수한 핵심 배경은 라이선스다. 헥토월렛원은 국내 지갑 구축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를 확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위해서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자금세탁방지(AML) 체계, 내부통제 시스템 등 까다로운 요건을 갖춰야 한다. 신규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이미 라이선스를 보유한 기업의 전략적 가치는 커질 수밖에 없다.
◆ PG만으로는 풀 수 없는 코인 결제
특히 스테이블코인 결제는 일반 전자결제와 구조가 다르다. 원화 결제는 은행 계좌, 카드망, PG 시스템을 통해 처리되지만 스테이블코인 결제는 가상자산의 보관, 이전, 지갑 생성, 거래 모니터링이 함께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자금세탁방지, 고객확인, 이상거래 탐지 등 규제 대응 체계도 요구된다. 단순 결제 처리 역량만으로는 사업 설계에 한계가 생기는 이유다. 헥토월렛원의 VASP 지위는 헥토그룹이 스테이블코인 결제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 규제 공백을 메우는 핵심 자산으로 볼 수 있다.
헥토월렛원의 사업 기반도 헥토그룹이 원하는 방향과 맞물려 있다. 회사는 다자간연산(MPC)과 다중서명 기반 지갑 기술을 앞세워 기업용 지갑 인프라 솔루션 '옥텟'과 개인용 지갑 서비스 '오하이월렛'을 운영하고 있다. 옥텟은 고객사가 자체 지갑 서비스를 붙일 수 있도록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형태로 제공되는 B2B 인프라다. 최근에는 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가 없는 결제대행(PG) 사업자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도록 지갑 서비스형(WaaS)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개인용 서비스인 오하이월렛은 고객사 앱 안에 웹뷰 형태로 탑재되는 방식이다. 별도 앱 설치 부담이 낮고 기존 금융·결제 서비스와 결합하기 쉽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헥토월렛원은 KG파이낸셜(구 KG모빌리언스)과 업무협약을 맺고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정산 사업화도 추진 중이다.
◆ 지갑 붙이고 결제망 키우는 헥토
헥토그룹이 그리는 구도는 지갑 기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헥토파이낸셜은 올해 2월 국내 기업 최초로 유에스디코인(USDC) 발행사 서클(Circle)의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CPN)에 합류했다. 시장에서는 헥토월렛원 인수가 서클 파트너십과 맞물려 헥토그룹의 스테이블코인 결제 구상을 구체화하는 기반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스테이블코인 결제망을 구축하려면 단순 결제 처리 역량뿐 아니라 가상자산 지갑 인프라와 규제 대응 체계가 함께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수 이후 그룹 내 역할 분담도 뚜렷해졌다. 헥토이노베이션은 올해 1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월렛원의 사명을 헥토월렛원으로 바꿨다. 최정록 헥토파이낸셜 기획본부장을 겸임 대표로 선임하며 계열사 편입 작업도 마무리했다. 현재 구조상 헥토월렛원은 지갑 인프라, 헥토파이낸셜은 결제망, 헥토이노베이션은 정보기술(IT) 운영과 계열 지배구조를 맡는 형태다.
◆ 첫 시험대 오른 오하이월렛…관건은 실제 거래량
관건은 시너지의 실현 속도다. 헥토월렛원은 오하이월렛을 오는 6월 금융 앱 형태로 리뉴얼해 선보일 계획이다. 헥토그룹 입장에서는 92억9000만원을 투입한 인수 효과를 시장에 보여줘야 하는 첫 검증대가 될 전망이다.
다만 라이선스와 지갑 기술이 곧바로 실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결제는 국내 규제 방향, 제휴처 확보, 실제 거래량 형성이 맞물려야 수익화가 가능하다. 특히 국내에서는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법적 성격과 사업자별 역할이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제도 정비가 늦어질 경우 사업화 속도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수요 확보도 변수다. PG사와 금융 앱이 지갑 인프라를 연동하더라도 이용자가 실제로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선택해야 거래가 발생한다. 기존 카드·계좌이체·간편결제 대비 수수료, 정산 속도, 환전 편의성에서 뚜렷한 장점을 보여줘야 한다. WaaS와 오하이월렛이 매출로 연결되려면 고객사 확대뿐 아니라 반복 거래를 만들 수 있는 결제처 확보가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장은 라이선스, 지갑 기술, 결제망이 동시에 갖춰져야 진입이 가능하다"며 "헥토그룹이 헥토월렛원을 품은 것은 단순한 지분 투자가 아니라 향후 결제 인프라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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